사람이 오랫동안 애써 해오던 일을 그만두면 해방감도 있지만, 상실감도 없지 않다. 중앙종단에서의 소임에 끝을 맺고, 귀사한 지 한 달이 다해가는 데도 왠지 지난날들에 대한 회상이 깊어간다. 그러나 깊어진 여러 회상의 그늘 속에서 유별나게 되뇌어지는 말이 있다 입보리행론(入普提行論)에 있는 보살도(菩薩道)를 수행하는 자는 “평범한 사람처럼 남으라!”이다. 이 말속에 두 가지 뜻이 함축되어 있는 것 같다. 그 하나가 늘 평범한 수행자로 있으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수행자(스님)는 자신의 시주(신도)를 즐겁게 하려 하거나 수행 외 어떤 목적을 이루려 하거나, 특권과 지위를 얻으려 할 때 분쟁에 휘말리고, 부질없는 욕망과 불화만이 수행자 자신과 그들 주변에 일어나고, 본분사인 배우고, 명상하고, 정진하는 활동이 퇴보한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유명해져서 자신을 알아보는 사람을 만났을 때 상대에게 다소 무례하게 보일지라도 “평범(평등)하게 대하라!”는 말이다.
모든 사람은 연륜이 거듭하여 때가 되면 조금씩 지위가 향상되고 소속기관에 대한 염려와 나름대로의 비전을 제시하고 발전을 위해 노력한다. 이런 현상은 세간만이 아니다. 출세간 세계도 마찬가지다. 승랍과 경륜이 거듭할수록 직책이 생기고 지위가 높아질수록 어른 취급을 받는다. 그러다 보면 소위 ‘종단관’이 형성되고 이에 따라 소속된 집단 안팎의 문제를 진단하고 비전을 제시하며, 할 일과 목표를 산정하여 나름대로 노력하게 된다. 이때 승이 속과 다른 것은 향상된 능력과 높아진 지위에도 불구하고 평범한 수행자로서의 자신을 지켜나가야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수행자로서의 초심(初心)과 평범한 사람으로서의 하심(下心)을 견지해야 하는 것이다.
이런 논리의 근거는 겸손해야 한다는 단순한 윤리적 관점만이 아니라 그 근원은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는 데 있다. 그리고,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나름대로의 가치와 역할이 있다는 생각이다. 다시 말해 대통령은 단지 대통령으로서의 부분일 뿐 전체가 되지 못하며, 그 어떤 부분적 존재의 존재 이유와 가치를 대신할 수 없다는 생각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능력이 생기고 지위가 높아지면, 부분의 역할을 독차지하여 혼자 분주하고, 이를 과시하며 이를 통해 지배를 정당화한다. 그렇게 되면 필연코 밖으로부터 무슨 소리가 일어나게 된다. 그런데 능력이 생기고 지위가 높아지면 너 나 할 것 없이 이명증(耳鳴症) 환자가 된다. 이명증은 풀벌레 같은 자기 소리에 잔귀가 먹고, 밖으로부터의 소리를 잘 듣지 못한다. 지도자의 이명증은 요란한 자기 소리에 갇혀 많은 사람들이 청량한 개울물소리같이 흘려보낸 소리를 듣지 못하거나 들어도 소리 그대로를 순수하게 감지하지 못한다.
사람이 행복해지려면 무엇을 갖기 전에 어두움에서 벗어나야 하는데 그것이 지혜로워지는 것이다. 지혜를 얻는 길은 세 가지가 있다. 이를 먼저 많이 보고 들어서 얻는 문혜(聞慧)다. 즉 궁금한 것에 대해 말해줄 것을 요청하는 청문(請問)을 하고 말해주는 설법(說法)을 신중하게 듣는 경청(敬聽)을 자주 해야 얻어진다. 이를 바탕으로 스스로 그 이치를 깊이 생각하면 사혜(思慧)를 얻고, 이를 다시 실천수행(實踐修行)하여 수혜(修慧)를 얻으면 무학도(無學道)에 이른다.
결국 사람은 남 말을 듣고 보지 못하면 어떤 지혜도 얻지 못하고, 지혜롭지 못한 자는 어떤 노력을 해도 갈등과 분열을 가져올 뿐 평화와 행복을 가져오지 못하게 된다. 돌이켜보면 지금의 내 심신이 장맛비에 젖은 것 같고, 떠나온 뒤끝이 개운치 못하고 유별나게 깊은 회상의 그늘 속에 빠져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없는 듯 평범하게 있지 못하고 너무 드러났으며, 모든 사람을 평범하게 대하는 하심(下心)과 평범한 수행자로서의 초심(初心)을 좀더 잘 지켜내지 못한 허물이 있다.
현고 스님·조계종 전 총무원장 대행
모든 사람은 연륜이 거듭하여 때가 되면 조금씩 지위가 향상되고 소속기관에 대한 염려와 나름대로의 비전을 제시하고 발전을 위해 노력한다. 이런 현상은 세간만이 아니다. 출세간 세계도 마찬가지다. 승랍과 경륜이 거듭할수록 직책이 생기고 지위가 높아질수록 어른 취급을 받는다. 그러다 보면 소위 ‘종단관’이 형성되고 이에 따라 소속된 집단 안팎의 문제를 진단하고 비전을 제시하며, 할 일과 목표를 산정하여 나름대로 노력하게 된다. 이때 승이 속과 다른 것은 향상된 능력과 높아진 지위에도 불구하고 평범한 수행자로서의 자신을 지켜나가야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수행자로서의 초심(初心)과 평범한 사람으로서의 하심(下心)을 견지해야 하는 것이다.
이런 논리의 근거는 겸손해야 한다는 단순한 윤리적 관점만이 아니라 그 근원은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는 데 있다. 그리고,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나름대로의 가치와 역할이 있다는 생각이다. 다시 말해 대통령은 단지 대통령으로서의 부분일 뿐 전체가 되지 못하며, 그 어떤 부분적 존재의 존재 이유와 가치를 대신할 수 없다는 생각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능력이 생기고 지위가 높아지면, 부분의 역할을 독차지하여 혼자 분주하고, 이를 과시하며 이를 통해 지배를 정당화한다. 그렇게 되면 필연코 밖으로부터 무슨 소리가 일어나게 된다. 그런데 능력이 생기고 지위가 높아지면 너 나 할 것 없이 이명증(耳鳴症) 환자가 된다. 이명증은 풀벌레 같은 자기 소리에 잔귀가 먹고, 밖으로부터의 소리를 잘 듣지 못한다. 지도자의 이명증은 요란한 자기 소리에 갇혀 많은 사람들이 청량한 개울물소리같이 흘려보낸 소리를 듣지 못하거나 들어도 소리 그대로를 순수하게 감지하지 못한다.
사람이 행복해지려면 무엇을 갖기 전에 어두움에서 벗어나야 하는데 그것이 지혜로워지는 것이다. 지혜를 얻는 길은 세 가지가 있다. 이를 먼저 많이 보고 들어서 얻는 문혜(聞慧)다. 즉 궁금한 것에 대해 말해줄 것을 요청하는 청문(請問)을 하고 말해주는 설법(說法)을 신중하게 듣는 경청(敬聽)을 자주 해야 얻어진다. 이를 바탕으로 스스로 그 이치를 깊이 생각하면 사혜(思慧)를 얻고, 이를 다시 실천수행(實踐修行)하여 수혜(修慧)를 얻으면 무학도(無學道)에 이른다.
결국 사람은 남 말을 듣고 보지 못하면 어떤 지혜도 얻지 못하고, 지혜롭지 못한 자는 어떤 노력을 해도 갈등과 분열을 가져올 뿐 평화와 행복을 가져오지 못하게 된다. 돌이켜보면 지금의 내 심신이 장맛비에 젖은 것 같고, 떠나온 뒤끝이 개운치 못하고 유별나게 깊은 회상의 그늘 속에 빠져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없는 듯 평범하게 있지 못하고 너무 드러났으며, 모든 사람을 평범하게 대하는 하심(下心)과 평범한 수행자로서의 초심(初心)을 좀더 잘 지켜내지 못한 허물이 있다.
현고 스님·조계종 전 총무원장 대행
2006-07-22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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