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벌레시사 詩社/문태준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벌레시사 詩社/문태준

입력 2006-06-24 00:00
수정 2006-06-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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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록 ‘복사꽃 마을’  7월 4일까지 서울 세종문화회관 미술관 신관
김길록 ‘복사꽃 마을’
7월 4일까지 서울 세종문화회관 미술관 신관


시인이랍시고 종일 하얀 종이만 갉아먹던 나에게

작은 채마밭을 가꾸는 행복이 생겼다

내가 찾고 왕왕 벌레가 찾아

밭은 나와 벌레가 함께 쓰는 밥상이요 모임이 되었다

선비들의 정자亭子 모임처럼 그럴듯하게

벌레와 나의 공동 소유인 밭을 벌레시사詩社라 불러주었다

나와 벌레는 한 젖을 먹는 관계요

나와 벌레는 무봉無縫의 푸른 구멍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유일한 노동은 단단한 턱으로 물렁물렁한 구멍을 만드는 일

꽃과 입과 문장의 숨통을 둥그렇게 터주는 일

한 올 한 올 다 끄집어내면 환하고 푸르게 흩어지는 그늘의 잎맥들
2006-06-24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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