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아침에] 나무를 심는 까닭은/원철 스님 대한불교 조계종 신도국장

[토요일 아침에] 나무를 심는 까닭은/원철 스님 대한불교 조계종 신도국장

입력 2006-04-08 00:00
수정 2006-04-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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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도심 종로 우정국로와 조계사 주변의 커다란 소나무들은 옮겨 심은 지 일년도 채 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본래 있었던 자리처럼 잘 어울린다. 지난겨울 흰 눈을 머리에 이고 서있는 그 모습에 취하여 들고 있던 찻잔이 식는 줄조차 몰랐다. 하긴 이 동네의 또 다른 이름은 수송동(壽松洞)이 아니던가.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천연기념물 백송(白松)은 큰법당 옆에서 오랜 세월 풍상을 버텨오며 그 이름값을 하느라고 여전히 그 기상이 당당하다.

중국 파두산의 소나무도 그랬다.‘재송(栽松)’이라고 불리는 노승이 그 산에 살면서 심어놓은 것들이었다. 그는 당시에 이름없는 뒷방노장이었다. 틈만 나면 소나무를 심는 것으로 수행을 대신했다. 그런 까닭에 주변에서 그를 ‘소나무 심는(栽松) 도인’이라는 별명으로 불러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공부가 하고 싶었다. 스승의 방으로 달려가 법문을 청했다. 그러나 돌아온 대답은 “나무나 열심히 심으라.”였다. 이유는 간단했다. 머리가 허옇고 눈가에 주름이 가득하며 손에 굳은 살이 박힌 그를 새삼 공부시킨다는 것도 어렵거니와 설사 가르친다고 한들 곧 다비장으로 가야 할 형편이었기 때문이다. 이를 눈치 챈 그는 인위적으로 몸을 바꾸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원하는 바대로 그는 다시 태어났다. 다섯 살 어린 몸으로 다시 출가 했다.

“스승님! 재송(栽松)이가 왔습니다.”

“무엇으로 그걸 증명하려는가?”

아이는 방 앞의 소나무를 가르키며 말했다.

“제가 심은 것입니다.”

그리하여 열심히 수행했고 나중에는 스승을 이어 그 산문의 방장이 되었다. 문하에서 유명한 육조혜능(638∼713)선사를 배출했다.

나무를 부지런히 심은 복으로 인하여 스스로 의지대로 환생했고, 또 수많은 제자를 길러내는 보이지 않는 힘이 되었다.

요즈음 방방곡곡에 개인이 만든 식물원과 수목원이 보통사람들에게도 적지 않은 관심과 시선을 받고 있다. 어느 부부가 30여년 동안 가꾸었다는, 섬 전체가 식물원인 남해 작은 섬의 해상농원은 이미 유명관광지 반열에 올랐다. 그들의 헌신과 희생없이 나무와 인간이 공존할 수 없었다. 임제(?∼867)선사는 나무심는 이유를 ‘산문의 경치를 가꾸고 동시에 뒷사람에게 모범을 보이기 위한 것’이라고 언급했다. 이는 모든 독림가(篤林家)들의 마음을 대변한 것이다.

나무사랑 제일은 일본의 대우양관(1758∼1831)선사일 것이다. 어느 날 머물고 있는 방의 마루 밑에서 죽순이 올라왔다. 점점 자라 마루바닥에 닿을 정도가 되었다. 그러자 마루를 그만큼 잘라내어 대나무가 뻗어나갈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문제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점점 더 자라더니 마침내 천장까지 닿을 정도가 되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다시 천장마저 뜯어내어 대나무가 뻗어올라 갈 수 있도록 배려했다. 거기까지는 좋았다. 하지만 날씨가 궂으면 문제가 달라진다. 그럼에도 선사는 그 구멍으로 비가 들어와도, 눈이 내려도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태연하게 말했다.

“야! 대나무가 많이 컸구나. 많이 컸어.”

하긴 모든 것은 가치의 우선 순위를 어디에 두는가에 달려있다. 그걸 몸소 보였을 뿐이다.

사람도 그렇지만 나무에도 어울리는 자리가 있다. 작년 이맘때쯤 큰 산불로 인하여 소실되어 모든 이의 가슴을 아프게 했던 천년고찰 낙산사는 굴참·물푸레·상수리나무 등 불에 강한 수림대를 새로 조성하는 계획을 진행하고 있다.

또 해인사가 고려대장경의 경판재료인 자작나무 등을 이번 봄에 가야산 일원에 심은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하지만 심는 것 못지않게 가꾸는 일이 더 중요하다.

왜냐하면 나무는 삼십년이 지난 이후라야 화답을 해오니까.

원철 스님 대한불교 조계종 신도국장
2006-04-08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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