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공간] 케이프타운의 한국인들/박은경 환경과문화 연구소장

[녹색공간] 케이프타운의 한국인들/박은경 환경과문화 연구소장

입력 2006-03-20 00:00
수정 2006-03-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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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초 지구의 남단 남아공화국의 케이프타운에 다녀왔다. 세번째다. 그러나 2002년 세계 지속가능발전 정상회의에 참가했을 때와는 사뭇 다른 기분으로 다녀왔다.180여개국의 정상급 대표들을 비롯하여 세계인 4만명이 모여서 이 병든 지구를 지속가능 발전하게 만들고자 했던 그때의 외침과는 달리, 이번 회의는 세계 지방자치단체 환경협의회(ICLEI) 세계 총회로 600여 지방정부 대표가 자신들의 도시를 각기 지속가능 발전하게 만들려는 소규모 모임이었다.

세계화 속에서 국가의 사회·경제적 역할이 약해짐에 따라 지역 중심의 정책과 정책 수행이 중시되자 지방정부의 역할이 강조된다.1990년 창립해 환경 의제를 다루는 지방정부 연합체인 ICLEI는 해가 거듭될수록 그들의 역할을 내세우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의 인구 10만인 어비인 시의 시장은 1989년 오존층 파괴를 줄이려는 조례를 통하여 1년만에 오존층 파괴의 주범인 염화불화탄소·프레온가스를 배출하는 생산품을 49% 줄이는 쾌거를 이루었다. 이에 지방정부의 환경보호 확산이 바로 지구를 살리는 첩경이라는 패러다임이 지방자치단체에 퍼져나갔다.

현재 캐나다 토론토에 세계본부가 있고,9개 지역에 지역사무소가 있다.490여 시가 회원으로 3년마다 세계 총회가 열리는데, 이 총회에서 선출된 21명으로 구성된 집행위원회가 최고 의결기구이다. 한국에서는 원세훈 서울 부시장이 집행위원으로 활약하며,30개 도시가 회원으로 가입하였다. 이번 세계 총회에는 한국인 80여명이 참여하여 전체 참석자의 13%를 한국인이 메운 셈이다. 요사이 국제회의에 한국인 참석률이 유난히 높은 경향을 그대로 반영한 회의였다.

혹자는 이러한 한국인들의 움직임을 보고 한국사회의 세계화가 이루어져 간다고 평한다. 그러나 필자는 그 많은 수가 참여한 이번 회의에서도 한국인의 비국제화를 절감하는 경험을 하였다.

ICLEI는 지방을 지속가능 발전하게 만들려는 노력으로 1992년 리우 환경정상회의에서 채택한 ‘의제 21’을 지방에 확산시키고 있다. 그 이행 과정에서 ICLEI가 특정 의제를 채택해 시 정부들이 공동으로 대처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2000년 10주년 행사가 열린 동독의 데사우에서는 물 문제가 주류를 이루었는데, 이번 케이프타운 회의에서는 ‘기후를 살리는 도시’라는 목표를 세운 대기 문제가 크게 부각했다. 기후변화와 연계된 에너지·폐기물·교통 문제가 함께 주요 의제로 다루어졌다.

각 도시에서 기후 온난화의 주범인 이산화탄소를 비롯한 온실가스 방출의 실상을 파악하고, 방출절감 목표치를 책정하는 지역의 행동 계획을 세울 뿐만 아니라 그 이행과정을 감시하여 이루어낸 진전사항을 보고하는 등 ‘기후를 살리는 도시’라는 프로젝트에는 세계의 770여 도시가 참여하고 있다.ICLEI의 회원도시가 490여곳인 점으로 보면 비회원 도시도 이 기후문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필자를 놀라게 한 현실은 회원도시가 30개이고 세계 총회 참가자의 13%를 차지하는 한국에서 ICLEI가 가장 주력하는 ‘기후를 살리는 도시’ 프로젝트에 한 도시도 참여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도대체 한국인들의 국제화는 무엇인가? 세계 곳곳에서 열리는 회의에 얼굴을 들이미는 양태에 그치고, 그 모임의 내용에는 전혀 관여하지 못하지 않는가? 왜 우리는 콘텐츠 없이 어느 세계조직의 회원이라는 이름만 좇는 그러한 세계화의 모양새만 보이는가?

필자는 다시 찾아간 희망봉의 끝자락에서 1487년 희망을 찾아 동쪽으로 가기 위하여 대서양에서 인도양으로 돌아서는 이 남단을 거쳐간 포르투갈의 디오스 이래 수없이 지나갔을 항해자들을 떠올렸다.

이번 회의에 간 한국인들은 동쪽에서 서쪽으로 먼 비행을 한 현대판 항해사들인 셈이다. 폭풍이 불어대는 지구 끝자락에 서서 필자는 한국인들도 역사 속의 탐험가들처럼 콘텐츠를 소유한 희망을 가진 개척자들이 되어 세계를 지속가능 발전하게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있기를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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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경 환경과문화 연구소장
2006-03-2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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