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명구 아주대 행정학 교수
연전에 읽은 미국 경제학자 허쉬만의지혜(번역본 제목 ‘떠날 것인가 남을 것인가?’)를 빌려 우리 교육 모순의 한 표상인 기러기 아빠 문제를 살펴보자. 차분하게 기러기 아빠의 행로를 추적하다 보면 사학법이 가야 할 길이 더 잘 보일 수도 있다.
조직이 본래의 목적에서 벗어나 제역할을 다하지 못할 때, 어떻게 해야 원상회복시킬 수 있을까?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조직에 남아서 개혁을 위해 싸우거나 아니면 조직을 떠남으로써 경고음을 발하는 것이다. 전자는 항의방식이고 후자는 이탈 방식이다. 조직마다 성격과 목표가 다른 연유로 정치·사회적 성격의 조직에서는 주로 항의방식이, 경제적 성격의 조직에서는 주로 이탈방식이 주요한 원상회복 메커니즘으로 작동한다. 물론 항의도 못하고 이탈도 못하면 자정능력을 잃어 조직은 사멸한다.
만일 한 단계 분석수준을 높여 어느 조직에서 이탈과 항의 두 방식을 동시적으로 작동시키면 어떤 결과가 나타날까? 미국의 예를 들어보자. 문제점 많은 공교육을 정상화시키기 위하여 교육소비자에게 비싸지만 보다 나은 사립학교로의 이탈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그 좋은 예이다. 이럴 경우 허쉬만의 분석에 따르자면 공립학교는 사립학교와의 경쟁을 통해 스스로 개혁의 길을 택하기보다는 퇴보의 나락으로 빠져들 공산이 크다. 정부 보조에 기대는 안이함도 문제지만 그보다는 주된 개혁세력들이 사립학교로 이탈해 가기 때문이다. 사립학교라는 선택이 없었다면 끝까지 남아서 가장 드높게 개혁의 목소리를 외칠 학부모들이 가장 먼저 공립학교를 떠나는 모순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구미 각국에 비하여 사립학교가 발달하지 않은 우리 현실에서 기러기 아빠는 한국 공교육 문제점에 대한 이탈의 대표적 결과다. 십여년 전만 하여도 흔치 않았던 일이 이제는 계층을 뛰어넘는 일상 풍경이 되었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기러기 아빠들은 아직 다 크지도 않은 아이들을 비싼 돈 들여 이역만리 타국에 보내놓고 스스로 자초한 외로움을 한 잔 술로 달래는가? 통계치는 없지만 추론은 가능하다. 소수는 이른바 글로벌 엘리트(global elite)에 대한 확신 때문이겠지만 다수는 우리네 공교육에 대한 불만 때문일 것이다. 인성교육도 제대로 못 시키면서 과외다, 학원이다 하여 돈은 돈대로 들이고 애는 애대로 잡느니 차라리 조기유학이 돈도 덜 들고 마음도 더 편하다는 계산이다. 이러다 보니 조기유학의 행렬이 불어나는 것이다.
그외 다수의 기러기 아빠들은 아이를 보내지 않았으면 남아서 가장 열심히 교육의 방향을 잡아줄 여론 주도층이다. 이런 계층이 이탈방식을 택하니 교육의 문제점을 스스로 치유할 목소리는 점점 줄어들고 남은 사람들은 더욱 불안해져 이탈 행렬의 끄트머리에 서게 되는 것이 아닐까?피폐해가는 우리네 농촌모습의 판박이다.
평소 여당이 못마땅한 점이 많지만 여당의 개정사학법을 변호하는 연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비록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지만 투명성 제고와 견제·균형의 제도적 장치를 통해 개정 사학법은 떠나지 않고 남아서 바꿀 수 있는 첫 단추를 꿰어주었기 때문이다. 국가정체성 위기를 들어 사학법 개정을 반대하는 박근혜 대표의 논리는 세상물정을 몰라도 한참 모르는 이야기다.
강명구 아주대 행정학 교수
2006-01-06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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