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눈] 남의 파산… 나의 파산/이효연 사회부 기자

[오늘의 눈] 남의 파산… 나의 파산/이효연 사회부 기자

입력 2005-11-23 00:00
수정 2005-11-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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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살면서 자기에게는 결코 닥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는 일들이 있다. 부모나 자녀의 갑작스러운 죽음, 암 말기라는 의사의 진단 등이 그런 범주에 들 것이다. 이에 못지않게 경제적인 ‘사형선고’인 파산도 나와 상관없다고 믿고 싶은 비극이다.

지난 16일자부터 5회에 걸쳐 연재된 서울신문 탐사보도 ‘파산자의 희망찾기’ 취재과정에서 만난 수많은 파산자들도 그랬다. 흥청망청 낭비나 모럴 해저드가 원인이 된 사람도 없지 않았지만 그보다는 사업실패, 실직, 사기, 이혼 등 한순간의 실수와 실패가 파산으로 이어진 경우가 많았다.

공통점이 있었다.‘미래에 대한 희망’이 절망의 지름길로 이어졌다는 것이었다. 내일이면 회사사정이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감에 빚을 내 직원들에게 월급을 줬고, 직장이 탄탄하게 유지될 것이라는 생각에 큰돈을 빌려 집을 샀다. 그러나 대부분의 ‘비(非) 파산자’들은 ‘돈 빌려 월급 줄 게 아니라 회사를 청산했어야지.’‘분에 넘치는 빚으로 집을 사는 것은 바보짓 아닌가.’ 등 자기만의 잣대로 쉽게 파산의 원인을 재단해 버리고 만다.

내가 하면 로맨스요,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말이 있다. 남보다 자신에게 관대한 인간심리를 빗댄 이 말은 비파산자들이 파산자들을 바라보는 시각에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는 오류다.

파산자는 경제적인 패인임에 틀림없다. 자본주의 경쟁사회에서 잘못된 예측과 무리한 투자로 실패를 했고 그에 대해 당연히 책임져야 할 사람들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는 ‘실패’와 ‘도덕’을 같은 저울대에 올려놓는 경향이 강하다. 죽을 힘을 다해 뛰었지만 끝내 완주에 실패한 마라톤 선수를 우리는 패자라고 부를지언정 도덕적 문제아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파산자는 영원한 패자가 아니다. 실제로 취재과정에서 만난 많은 파산자들은 지금은 빚을 지고 살지만 머잖은 미래에 빚을 갚을 수 있을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패자에게는 언제든 경쟁이라는 사회의 게임에 다시 출전해 거기서 승리할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이효연 사회부 기자 belle@seoul.co.kr
2005-11-23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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