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마당] 가을의 소리/김용택 시인·교사

[문화마당] 가을의 소리/김용택 시인·교사

입력 2005-08-11 00:00
수정 2005-08-11 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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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을 열어 놓고 자는 여름이면 더위 때문에 종종 새벽에 잠을 깬다. 차 소리들이 하도 시끄러워 지금이 몇 시인데 저렇게 차들이 돌아다니고 있는지 궁금하여 시계를 보면 3시일 때도 있고 4시일 때도 있다.

전주에 온 지 7,8년이 되었지만 지금도 저렇게 많은 사람들이 새벽에 차를 타고 돌아다니는 것을 다 이해하지 못한다.

이 세상의 모든 생물들은 밤이 되면 자야 한다고 나는 알고 있다. 나무들도 꽃들도 사람도 닭도 소도 그리고 강물 속에 사는 물고기도 잠을 자는 걸로 나는 알고 있다.

과학적으로 증명이 되어 있는지 모르겠지만, 횃불을 가지고 강물에 나가 강물 속을 훤히 비추어 보면 커다란 고기들이 얕은 물가에 나와 조는 것을 많이 보았다.

눈을 뜬 채 죽는 물고기마저도 그렇게 잠을 자는 마당에 하물며 사람들이 그렇게 잠을 안 자고 멀쩡하게 새벽까지 돌아다니는데 어찌 내가 놀라지 않겠는가. 도시의 밤을 돌아다니며 내가 고통스러워하는 것은 멀쩡하게 살아 있는 나무에 감아 놓은 작은 알전구들이다.

밤이 되어도 환한 불빛과 자동차 소음 때문에 편히 쉬지 못하는 나무들에게 밤새워 알전구 불을 켜 놓으니, 나무들이 어떻게 한 순간인들 편하게 잘 시간이 있겠는가 말이다.

그렇게 불을 켜 놓은 것도 모자라 어떤 집은 그 알전구 불을 저녁 내내 깜박거리게 한다. 나무에 감아 놓은 전구들이 깜박거리는 것을 보면 나는 가슴이 답답해져 온다. 어느 여름날 밤 서울 강남 터미널 앞 플라타너스 나무 아래 서 있었다. 어? 그런데 이게 무슨 소린가!밤인데 매미가 울고 있었던 것이다. 세상에 매미가 밤에 울다니, 이건 제 정신이 아니었다.

밤을 잃어버린 것이다. 그 매미들은 악을 쓰며 울고 있었다. 차 소리를 이기려는 듯한 그들의 악쓰는 소리는 바로 악쓰며 사는 우리들의 모습이었다. 우리들에게 한 번 물어 보자. 우리들이 사는 것이 지금 제 정신으로 사는가?

아무튼, 너무 더워 잠이 깨어 가만히 누워 있으면 새벽을 달리는 자동차 소리가 들린다.

어쩔 때는 오토바이가 어찌나 큰 소리로 속도를 내며 달리는지 옆에서 곤히 자고 있는 아이들을 들여다볼 때도 있다.

새벽이어서 차들이 과속들을 하는지, 몇 분을 주기로 ‘끼이익’ 하는 소리가 들린다.‘끼이익’ 하는 소리만 들릴 때도 있고,‘끼이익’ 하는 소리와 동시에 ‘퍽’ 하는 소리가 들리기도 하는데, 그러면 반듯이 또 ‘비요비요’ 하는 소리가 뒤따른다.

오늘 새벽에도 나는 잠이 깨었다. 오늘도 여느 날과 다름없이 차들이 달리고,‘끼이익’하는 소리가 더러 들리고 ‘퍽’ 하는 소리에 뒤 이어 ‘비요비요’하는 소리를 듣는다. 그런데 너무나 큰 ‘퍽’소리와 요란한 ‘비요비요’ 소리를 귀 기울여 듣다가 나는 그 요란한 소리 속에서 아주 색다른 소리를 들었다. 나는 눈을 뚝 떴다. 풀벌레 울음 소리였다.

어쩐지 어제 저녁 갑자기 바람의 느낌이 달라졌나 싶었는데, 풀벌레 울음소리가 그 선선해진 바람결을 따라 온 모양이다.

시끄러운 소음 속에서 풀벌레 울음소리를 찾아 들으며 누워 있는데 이번에는 다시 또 다른 소리가 들린다. 가만히 귀를 기울이니, 오! 아파트 바로 앞 텃밭에서 호미로 땅을 긁고 파는 소리가 들렸다.

내가 시골에 살 때 어머님께서 새벽 강을 건너가 밭을 맬 때 땅을 파면 호미 끝에 걸려 뒹구는 자갈 소리가 들리는 것이었다.

무슨 이야기를 하는 지 두런두런 이야기하는 소리까지. 나는 얼른 일어나 베란다에 서서 아직은 어둑한 밭을 손보고 있는 할머니들의 정겨운 모습을 오래 바라보고 있었다. 흙에서 들리는 생명의 소리들이 도시의 소음을 뚫고 내 귀를 씻고 있다.
2005-08-11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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