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사기꾼이 있었다. 그는 불륜을 폭로하겠다는 협박전화를 공무원들에게 무작위로 걸었다. 전화를 받은 공무원들은 열 명 중 한 명꼴로 범인이 불러준 계좌로 송금을 해주었다. 공무원들이 하수인지 아니면 범인이 고수인지는 모르겠지만, 구태의연한 코미디였음은 분명했다. 이 소식과 접하면서 여자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노희경 작가의 ‘유행가가 되리’라는 드라마에서 남편이 바람피웠다고 몇 년 동안 파르르 떠는 친구 윤여정을 보면서 박원숙은 그까짓 남편 좀 빌려주면 어때서라고 심드렁한 반응을 보인다. 불륜의 공화국에서 여자들이 가족을 유지, 보수, 수리하면서 살아갈 수 있도록 해주는 방어기제의 하나가 남편을 대여하면서도 제때에 반납되기만 하면 모른 척 무시하는 것이었다.
사회 현상으로서 불륜은 금기를 위반하고픈 유혹이다. 유혹이 없었더라면 에덴동산은 영원했겠지만 인류 역사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시간이 영원히 멈춘 권태로운 천국에서, 두 사람은 서로에게 얼마나 지겨웠을까. 그런데 이브가 뱀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게 됨으로써 사태는 한순간에 뒤집혔다. 남자는 힘들여 땅을 갈고, 여자는 목숨걸고 아이를 낳았다. 남자의 몸은 땀방울로 반짝거렸고, 여자의 눈은 생기로 떨렸다. 아이의 눈동자 속에 자신들의 기억을 남겨 둔 채 그들은 죽을 수 있었다. 이브의 유혹으로 비로소 신성가족이 형성되었다. 이처럼 금기의 위반은 사태를 발생시키는 동인이 된다.
불륜의 유혹을 금하는 제도와 법은 개인의 삶에 질서와 안정을 가져다 주지만 바로 그 때문에 권태와 삶의 화석화를 동반하기도 한다. 사람들에게는 안정과 조화와 질서에 대한 욕구만큼이나 반복과 권태와 예측 가능한 삶을 견딜 수 없어하는 모순적인 충동이 공존한다.
도처에 편재한 사랑은 엄청난 축복으로 간주되지만, 일단 결혼하고 나면 배우자와의 배타적이고 독점적인 사랑만이 허용된다. 사랑의 감정은 일생에 단 한 번 일어나는 일회적인 것이 아니다. 배우자라는 한 사람에게만 영원히 유지되는 감정도 아니다. 사랑의 감정이 축복이라지만 결혼제도로 묶이면 혼외의 사랑은 발생하지 말아야 할 사태이며 저주가 된다. 문제는 금기가 없는 사랑은 갈망도 소멸시킨다는 데 있다. 그래서 셰익스피어는 결혼제도 안에서 진정한 사랑의 도전이 불륜이라고까지 말한다. 더 이상 그 날이 그 날이 아닌, 새로운 나날이 되도록 만들어 주는데 불륜의 유혹만큼 자극적인 것이 있을까.
정신분석학적인 설명에 따르면 불륜은 불륜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무슨 일이 있더라도 대면하고 싶지 않은 ‘어떤 것’을 감추기 위한 핑계이다. 그 ‘어떤 것’은 개인에 따라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정신분석학에 따르면 인생의 끝에서 마주치게 될 죽음과 만나고 싶지 않다는 무의식적 욕망이 불륜을 꿈꾸도록 만드는 ‘특별한’ 이유가 된다. 이 경우 불륜은 죽음과 허무를 지연시키는 아름다운 유혹으로 포장된다. 삶의 공허와 무의 심연을 가려줄 베일과 환상의 역할을 불륜이 대행해 준다는 것이다.
그러나 많은 경우 불륜이 이처럼 삶의 실존적 우울과 적나라한 진실을 은폐하기 위한 ‘아주 특별한’ 시적인 이유에서 비롯된 것만은 아닐 것이다. 다수 남성들에게 불륜은 들키지만 않는다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사소한 것이다. 일례로, 열 명에 한 명꼴의 남성들에게 불륜은 자신의 능력과 권력과 재력과 정력을 확인하고 즐기는 방식이 된다. 처벌을 피하고 체면만 유지될 수 있다면, 불륜은 기존 가족제도를 유지시키는 수단으로 기능한다.
이렇게 본다면 우리 사회에서 불륜은 제도적인 일부일처제가 포용할 수 없는 잉여를 해결해주는 위선적인 방식과 다르지 않다. 남자는 불륜을 행하고 여자는 불륜을 무시함으로써, 세속적인 신성가족을 유지하기 위해 남녀 모두 불륜을 활용하고 있는 셈이다. 그 사실을 앞장서서 보여준 것이 저출산 시대를 걱정하는 참여정부의 공무원들이지 않았을까.
임옥희 여성문화이론연구소 대표
사회 현상으로서 불륜은 금기를 위반하고픈 유혹이다. 유혹이 없었더라면 에덴동산은 영원했겠지만 인류 역사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시간이 영원히 멈춘 권태로운 천국에서, 두 사람은 서로에게 얼마나 지겨웠을까. 그런데 이브가 뱀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게 됨으로써 사태는 한순간에 뒤집혔다. 남자는 힘들여 땅을 갈고, 여자는 목숨걸고 아이를 낳았다. 남자의 몸은 땀방울로 반짝거렸고, 여자의 눈은 생기로 떨렸다. 아이의 눈동자 속에 자신들의 기억을 남겨 둔 채 그들은 죽을 수 있었다. 이브의 유혹으로 비로소 신성가족이 형성되었다. 이처럼 금기의 위반은 사태를 발생시키는 동인이 된다.
불륜의 유혹을 금하는 제도와 법은 개인의 삶에 질서와 안정을 가져다 주지만 바로 그 때문에 권태와 삶의 화석화를 동반하기도 한다. 사람들에게는 안정과 조화와 질서에 대한 욕구만큼이나 반복과 권태와 예측 가능한 삶을 견딜 수 없어하는 모순적인 충동이 공존한다.
도처에 편재한 사랑은 엄청난 축복으로 간주되지만, 일단 결혼하고 나면 배우자와의 배타적이고 독점적인 사랑만이 허용된다. 사랑의 감정은 일생에 단 한 번 일어나는 일회적인 것이 아니다. 배우자라는 한 사람에게만 영원히 유지되는 감정도 아니다. 사랑의 감정이 축복이라지만 결혼제도로 묶이면 혼외의 사랑은 발생하지 말아야 할 사태이며 저주가 된다. 문제는 금기가 없는 사랑은 갈망도 소멸시킨다는 데 있다. 그래서 셰익스피어는 결혼제도 안에서 진정한 사랑의 도전이 불륜이라고까지 말한다. 더 이상 그 날이 그 날이 아닌, 새로운 나날이 되도록 만들어 주는데 불륜의 유혹만큼 자극적인 것이 있을까.
정신분석학적인 설명에 따르면 불륜은 불륜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무슨 일이 있더라도 대면하고 싶지 않은 ‘어떤 것’을 감추기 위한 핑계이다. 그 ‘어떤 것’은 개인에 따라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정신분석학에 따르면 인생의 끝에서 마주치게 될 죽음과 만나고 싶지 않다는 무의식적 욕망이 불륜을 꿈꾸도록 만드는 ‘특별한’ 이유가 된다. 이 경우 불륜은 죽음과 허무를 지연시키는 아름다운 유혹으로 포장된다. 삶의 공허와 무의 심연을 가려줄 베일과 환상의 역할을 불륜이 대행해 준다는 것이다.
그러나 많은 경우 불륜이 이처럼 삶의 실존적 우울과 적나라한 진실을 은폐하기 위한 ‘아주 특별한’ 시적인 이유에서 비롯된 것만은 아닐 것이다. 다수 남성들에게 불륜은 들키지만 않는다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사소한 것이다. 일례로, 열 명에 한 명꼴의 남성들에게 불륜은 자신의 능력과 권력과 재력과 정력을 확인하고 즐기는 방식이 된다. 처벌을 피하고 체면만 유지될 수 있다면, 불륜은 기존 가족제도를 유지시키는 수단으로 기능한다.
이렇게 본다면 우리 사회에서 불륜은 제도적인 일부일처제가 포용할 수 없는 잉여를 해결해주는 위선적인 방식과 다르지 않다. 남자는 불륜을 행하고 여자는 불륜을 무시함으로써, 세속적인 신성가족을 유지하기 위해 남녀 모두 불륜을 활용하고 있는 셈이다. 그 사실을 앞장서서 보여준 것이 저출산 시대를 걱정하는 참여정부의 공무원들이지 않았을까.
임옥희 여성문화이론연구소 대표
2005-06-27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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