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광장] 시장에 맞서지 말라/우득정 논설위원

[서울광장] 시장에 맞서지 말라/우득정 논설위원

입력 2005-06-11 00:00
수정 2005-06-11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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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정부 출범 후 5차례의 초강도 투기억제책을 이겨낼 정도로 슈퍼 박테리아보다 더한 시장의 힘을 이제야 알아차린 것일까.

우득정 논설위원
우득정 논설위원 우득정 논설위원
지난 2월초 5억 4000만원에 매물로 내놓았던 분당의 이매동 49평형 아파트가 4개월만에 9억 5000만원에 사자는 사람이 나왔음에도 집주인은 매물을 거둬들였다. 자고나면 몇천만원씩 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전남도가 ‘J프로젝트’ 중심지역으로 설정한 전남 해남에서는 요즘 논밭을 갈아엎고 10㎝ 간격으로 무화과 묘목을 심는 것이 유행이라고 한다. 땅 수용시 무화과 묘목이 가장 높은 값을 받을 수 있는 데다, 묘목 수에 따라 수용가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서민의 정권을 표방하고 나선 참여정부가 역설적으로 지주와 부자들의 이익에 가장 충실했던 정권으로 평가받게 될 것이다.’ 서울 강남을 중심으로 촉발된 집값 폭등세가 분당, 용인, 죽전, 평촌 등 주변지역으로 확산되고, 전국적으로 개발붐에 편승한 투기바람이 휘몰아치면서 전문가들이 예단한 참여정부의 평가표다. 정권 출범 후 2년여만에 전국의 땅값을 500조원이나 올려놓았으니 전국의 땅 45%를 보유한 1%의 땅부자들만 배불린 꼴이다. 세금납부액을 기준으로 하면 땅부자 1인당 18억원의 이익을 안겨줬다.

사정이 이러다 보니 요즘 시중의 화제는 온통 집값, 땅값이다. 그럼에도 몇달 사이에 집값이 수억원이 올랐다는 수혜지역 주민도,‘호떡집’ 불구경에 짜증만 늘어나는 서민들도 치솟는 집값, 땅값에 불안하기는 매한가지다. 당국자들은 이곳저곳에서 자문을 구하지만 마땅한 해법을 찾지 못해 전전긍긍하고 있다. 한덕수 경제부총리의 말처럼 경기회복을 위해 기준금리 연 3.25%를 고수해야 하는 상황에서 400조원에 이르는 부동자금이 부동산 쪽으로 몰리는 것을 막을 방도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한 부총리는 서울 강남과 분당 정도에 일찌감치 ‘방화벽’을 설치하고 그 안에서 가진 자들끼리 치고받도록 내버려두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가정을 해본다고 한다. 그랬더라면 지금 강남 이남지역을 휩쓸고 있는 ‘판교발 쓰나미’는 피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미 둑이 무너진 이상 투기가 불거지는 곳마다 뒤따라 다니며 두더지 잡기식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한다. 추병직 건설교통부장관은 ‘공급이 최선의 해법’이라면서도 강남 얘기만 나오면 목소리가 잦아든다.‘강남 규제’라는 참여정부의 기본틀을 깰 용기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오는 11월 판교신도시 분양이 끝날 때까지 기다려보자는 식으로 꼬리를 내린다.

참여정부 출범 후 5차례의 초강도 투기억제책을 이겨낼 정도로 슈퍼 박테리아보다 더한 시장의 힘을 이제야 알아차린 것일까.‘위원회는 우리의 희망’이라며 ‘10·29대책’을 위원회의 최대 치적으로 내세우는 이정우 청와대 정책기획위원장이나 역대 어느 정권보다 부동산을 안정적으로 관리하고 있다는 이해찬 국무총리의 인식을 보면 그런 것 같지 않다. 이들은 좀 더 밀어붙이면 시장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투기세력을 잠재울 수 있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한마디로 오기의 발로다.

지금이라도 부동산 시장을 안정적으로 관리하고 싶다면 발상을 바꿔야 한다. 백화점의 명품 코너처럼 돈 많은 사람들이 그들만의 특권을 누릴 수 있는 공간을 열어주어야 한다. 서민들로서는 명품족의 노는 행태가 눈꼴 사나울지 몰라도 백화점 점주에게 명품관을 폐쇄하라고 요구해서는 안 된다. 이것이 한 부총리가 말한 ‘방화벽’이자 시장논리이기도 하다.

건교부는 서울시가 강남 재건축 완화를 요구하자 안전진단 규정을 동원해 또다시 반대했다. 이런 식으로는 집값을 잡지 못한다. 공급 확대를 통해 서울 강남의 스카이라인마저도 바꾸겠다는 열린 마음을 가져야만 지금의 광풍을 잠재울 수 있다.‘시장에 맞서지 말라.’ 500조원이라는 값비싼 교육비를 들인 시장의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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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득정 논설위원 djwootk@seoul.co.kr
2005-06-11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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