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눈] 합의 순간에 ‘파기’ 암시하는 北/김학준 지방자치뉴스부 기자

[오늘의 눈] 합의 순간에 ‘파기’ 암시하는 北/김학준 지방자치뉴스부 기자

입력 2005-06-07 00:00
수정 2005-06-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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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0일 평양 방문을 앞둔 인천시대표단에 당국 관계자는 북한에 체류하는 동안 ‘벙어리’가 돼줄 것을 당부했다. 불만이 있더라도 남북관계를 고려해 언행을 자제해 달라는 취지였다.

북한측은 대표단이 평양에 도착하자마자 양해도 없이 김일성 주석 동상이 있는 만수대로 이끌었다. 어리둥절했지만 그쪽의 사정을 알기에 으레 그런 곳이거니 했다. 이어 김일성 생가와 주체탑으로 잇따라 안내됐을 때도 누구 하나 불평하지 않았다. 마뜩지는 않았지만 ‘통과의례’쯤으로 여겼다.

그러나 이번 방북의 성과로 남·북한 아시안게임 공동유치가 발표됐을 때는 정말 벙어리로 남기 어려웠다. 북측 대표는 안상수 인천시장과 합의문에 서명하자마자 “합의서가 다는 아니다.” “합의하고 실천은 별개다.”라며 사정에 따라 합의가 파기될 수도 있다는 뉘앙스를 풍겼다. 나아가 “시장 선생이 욕심을 부려서…”라며 마치 큰 선심이나 쓴 듯이 거드름을 피웠다. 역으로 우리측이 얼마나 다급하게 매달렸는지를 유추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

합의는 실천을 전제로 할 때 의미가 있는 것이지, 그렇지 않을 경우 ‘전시물’에 불과하다. 물론 아무리 철석같은 합의라도 피치 못할 사정에 의해 깨질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향후 상황논리에 의한 것일 뿐, 합의하는 순간에 입에 담을 말이 아니다. 아시안게임 공동유치는 북한에 대한 막대한 지원을 전제로 한 것이다. 따라서 북측이 앞으로 세부협상시 지원내용 등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수시로 ‘파기’를 들먹이는 상황을 상정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남북 정부간의 합의도 불과 며칠 사이에 오락가락하는 사례가 적지 않은 점으로 미뤄 아시안게임이 열리는 2014년은 멀기만 하다. 이번 인천시의 ‘장도’가 민족화해라는 대의를 위해 ‘가야 할 길’이라는 당위에도 불구하고 “내년 지방선거를 의식해 대책없이 일을 저질렀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김학준 지방자치뉴스부 기자 kimhj@seoul.co.kr
2005-06-07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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