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여섯살 때 미군부대 부근에서 자랐는데, 바로 옆집에 나보다 한 살 어린 ‘톰’이라는 흑인 아이가 살고 있었다. 그의 엄마는 ‘양공주’였다. 톰은 피부색이 다르고 우리말도 제대로 못해 걸핏하면 “튀기!”라고 놀리고 때렸다.
철없던 시절의 부끄러움을 가슴 깊이 묻어두었는데, 몇해전 베트남을 방문했을 때 우연찮게 그 기억이 되살아났다. 우리 일행을 안내한 교포 H씨는 베트남 여성과 결혼해서 쌍둥이 딸을 키우고 있었다. 그와 대화 도중 ‘라이따이한’이란 말이 나왔는데, 그는 “여기서 그런 말 함부로 쓰면 뭇매 맞습니다.”라며 무척 화를 냈다. 라이따이한(절반은 한국인)이란 한국과 베트남인 부부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인데, 베트남 아이들이 경멸조로 부르는 말이라고 했다. 말하자면 우리가 ‘튀기’라고 놀리는 것과 같다는 거였다.
아차 싶어 “그럼 뭐라고 해야 하느냐?”고 물었더니 ‘한인2세’라고 불러야 한다고 했다. 그는 한국 신문에서 라이따이한이란 표현을 볼 때마다 울화가 치밀었다는 말도 해 주었다. 요즘 베트남 승전 30주년 특집기사에서 라이따이한이 가끔 등장하는데, 이제 본뜻을 알았으면 남의 가슴에 못박는 말이니까 삼가는 게 좋겠다.
육철수 논설위원 ycs@seoul.co.kr
철없던 시절의 부끄러움을 가슴 깊이 묻어두었는데, 몇해전 베트남을 방문했을 때 우연찮게 그 기억이 되살아났다. 우리 일행을 안내한 교포 H씨는 베트남 여성과 결혼해서 쌍둥이 딸을 키우고 있었다. 그와 대화 도중 ‘라이따이한’이란 말이 나왔는데, 그는 “여기서 그런 말 함부로 쓰면 뭇매 맞습니다.”라며 무척 화를 냈다. 라이따이한(절반은 한국인)이란 한국과 베트남인 부부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인데, 베트남 아이들이 경멸조로 부르는 말이라고 했다. 말하자면 우리가 ‘튀기’라고 놀리는 것과 같다는 거였다.
아차 싶어 “그럼 뭐라고 해야 하느냐?”고 물었더니 ‘한인2세’라고 불러야 한다고 했다. 그는 한국 신문에서 라이따이한이란 표현을 볼 때마다 울화가 치밀었다는 말도 해 주었다. 요즘 베트남 승전 30주년 특집기사에서 라이따이한이 가끔 등장하는데, 이제 본뜻을 알았으면 남의 가슴에 못박는 말이니까 삼가는 게 좋겠다.
육철수 논설위원 ycs@seoul.co.kr
2005-05-05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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