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절을 앞두고 주한일본대사가 서울 한복판에서 독도를 일본 땅이라고 주장했다. 외교관의 단순한 망언이 아니다. 중국 정부가 고구려·발해 역사를 중국 역사의 일부라고 발표한 음모와 비슷한 충격적인 발언이다.‘한국 침략’을 ‘진출’로 바꾸고 종군 위안부, 대학살, 경제 수탈 등 일본의 침략 사실을 축소·삭제했던 2001년 일본 ‘신편 교과서 파동’에서 한걸음 더 나가, 침략을 미화하는 일본 극우 세력의 ‘자유주의 사관’과 국가주의가 만연되고 있는 상황에서 나온 발언이기 때문이다.
참여정부는 중국과 일본의 역사 전쟁 도전에 안팎곱사등이가 됐다. 중국은 한국 고대사의 시원인 고구려사를 중국사의 일부로, 일본은 독도 영유권 주장 등 한국 근·현대사를 날조해 한국사를 뿌리부터 흔들어 놓고 있다. 중국·일본이 도발한 역사 전쟁은 단순한 과거사 기술만의 문제가 아니라 21세기 한·중·일 관계사를 결정할 문제이기 때문에 망언이 나올 때마다 항의나 하는 미봉책으로 대응할 일이 아니다.
2005년은 을사국치 100년, 광복 60돌이 되는 해다. 중국·일본과의 역사 전쟁에 앞서서 치욕과 영광이 겹쳐진 이 100년의 역사 정리는 민족의 새 진로 설정을 위해서도 서둘렀어야 할 과제다.
건국 후 새 정권이 들어설 때마다 과거사 정리와 한국사 체계화가 시도되긴 했으나 전통문화와 현대사에 대한 진정한 의미와 실상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채 사건 중심으로 접근, 혼란만 가중되고 중국·일본의 역사 전쟁 도전에 무방비 상태가 됐다. 한국 역사에 관한 의도적인 왜곡과 망언은 이제 극우 일본 정치인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주한일본대사가 언론회관에서 독도가 일본 땅이라고 주장할 만한 틈새를 한국 정부·학자·지식인이 보여 주었다.
일본의 한국 침략을 수탈만이 아니라 개발이라는 측면에서도 보자는 경제학자의 망언을 비롯하여 정신대에 관한 경제사학자의 망언, 고구려사는 중국동북아사라는 동양사학자의 망언, 일본의 작위까지 받은 구한말 고관대작과 일제 밀정의 후손까지 독립유공자 후손이라고 나서는 망언 등 망언이 만발하고 있다.
최근 경제사학계에는 한국의 근대화가 일본의 한국 지배 침략기에 깔아 놓은 경제성장의 연장이라는 일본학자의 중진자본주의론이 무시못할 학설(?)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한국 사학계는 일제의 식민사관을 극복하기도 전에 일본 극우파 학자들의 식민지배 미화론에 곤혹스럽기만 하다. 그뿐만이 아니다. 한국 정치인들의 일제 침략이후의 한·일 관계사에 관한 무지와 적절치 못한 발언까지 남발돼 참으로 딱한 형국이다.
1998년 한·일 공동 파트너십 선언에 앞서 가진 양국 정상회담에서 한국 대통령은 “일본의 침략 문제는 이제 더 이상 거론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일제 침략의 실체와 친일 세력의 죄악상이 밝혀지지 않은 채 나온 한국 대통령의 통큰 소리를 기다렸다는 듯이 일본에서는 한국 침략사를 왜곡한 ‘신편교과서’가 정식 교재로 채택되었고 일본 총리가 2차대전 전범들의 위패를 안치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 일본의 이런 후안무치한 작태를 방조한 것은 사려 깊지 못한 정치인의 발언뿐만 아니라 일본의 제국주의 시혜론에 동조하는 친일 인사들의 증가다.
광복 후 한국 역대 정권의 문화 정책에도 많은 문제가 있다. 일본·중국의 한국사 왜곡을 바로잡아줄 학술원·국사편찬위원회·한국학 중앙연구원·독립기념관 등이 제구실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27년전 국학 연구 총본산으로 출범한 한국학중앙연구원은 총리나 장관 등 여권 중진들의 퇴임 후 보직처로 전락했고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 파동으로 건립된 독립기념관도 한·일 역사 전쟁 논의에서 비켜서 있다.
국학 관련 중요 기관을 설립 목적보다 정치 목적으로 운영해온 파행 행정이 중국의 역사 전쟁 도발에 또 하나의 연구소를 서둘러 만드는 모순을 드러냈다.2005년 일본 교과서 검인정 작업을 둘러싸고 더욱 첨예화될 일본의 한국침략사 왜곡을 과연 어떻게 대응할지 걱정이다.
박석흥 대전대 문화사학과 겸임교수·명예논설위원
참여정부는 중국과 일본의 역사 전쟁 도전에 안팎곱사등이가 됐다. 중국은 한국 고대사의 시원인 고구려사를 중국사의 일부로, 일본은 독도 영유권 주장 등 한국 근·현대사를 날조해 한국사를 뿌리부터 흔들어 놓고 있다. 중국·일본이 도발한 역사 전쟁은 단순한 과거사 기술만의 문제가 아니라 21세기 한·중·일 관계사를 결정할 문제이기 때문에 망언이 나올 때마다 항의나 하는 미봉책으로 대응할 일이 아니다.
2005년은 을사국치 100년, 광복 60돌이 되는 해다. 중국·일본과의 역사 전쟁에 앞서서 치욕과 영광이 겹쳐진 이 100년의 역사 정리는 민족의 새 진로 설정을 위해서도 서둘렀어야 할 과제다.
건국 후 새 정권이 들어설 때마다 과거사 정리와 한국사 체계화가 시도되긴 했으나 전통문화와 현대사에 대한 진정한 의미와 실상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채 사건 중심으로 접근, 혼란만 가중되고 중국·일본의 역사 전쟁 도전에 무방비 상태가 됐다. 한국 역사에 관한 의도적인 왜곡과 망언은 이제 극우 일본 정치인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주한일본대사가 언론회관에서 독도가 일본 땅이라고 주장할 만한 틈새를 한국 정부·학자·지식인이 보여 주었다.
일본의 한국 침략을 수탈만이 아니라 개발이라는 측면에서도 보자는 경제학자의 망언을 비롯하여 정신대에 관한 경제사학자의 망언, 고구려사는 중국동북아사라는 동양사학자의 망언, 일본의 작위까지 받은 구한말 고관대작과 일제 밀정의 후손까지 독립유공자 후손이라고 나서는 망언 등 망언이 만발하고 있다.
최근 경제사학계에는 한국의 근대화가 일본의 한국 지배 침략기에 깔아 놓은 경제성장의 연장이라는 일본학자의 중진자본주의론이 무시못할 학설(?)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한국 사학계는 일제의 식민사관을 극복하기도 전에 일본 극우파 학자들의 식민지배 미화론에 곤혹스럽기만 하다. 그뿐만이 아니다. 한국 정치인들의 일제 침략이후의 한·일 관계사에 관한 무지와 적절치 못한 발언까지 남발돼 참으로 딱한 형국이다.
1998년 한·일 공동 파트너십 선언에 앞서 가진 양국 정상회담에서 한국 대통령은 “일본의 침략 문제는 이제 더 이상 거론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일제 침략의 실체와 친일 세력의 죄악상이 밝혀지지 않은 채 나온 한국 대통령의 통큰 소리를 기다렸다는 듯이 일본에서는 한국 침략사를 왜곡한 ‘신편교과서’가 정식 교재로 채택되었고 일본 총리가 2차대전 전범들의 위패를 안치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 일본의 이런 후안무치한 작태를 방조한 것은 사려 깊지 못한 정치인의 발언뿐만 아니라 일본의 제국주의 시혜론에 동조하는 친일 인사들의 증가다.
광복 후 한국 역대 정권의 문화 정책에도 많은 문제가 있다. 일본·중국의 한국사 왜곡을 바로잡아줄 학술원·국사편찬위원회·한국학 중앙연구원·독립기념관 등이 제구실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27년전 국학 연구 총본산으로 출범한 한국학중앙연구원은 총리나 장관 등 여권 중진들의 퇴임 후 보직처로 전락했고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 파동으로 건립된 독립기념관도 한·일 역사 전쟁 논의에서 비켜서 있다.
국학 관련 중요 기관을 설립 목적보다 정치 목적으로 운영해온 파행 행정이 중국의 역사 전쟁 도발에 또 하나의 연구소를 서둘러 만드는 모순을 드러냈다.2005년 일본 교과서 검인정 작업을 둘러싸고 더욱 첨예화될 일본의 한국침략사 왜곡을 과연 어떻게 대응할지 걱정이다.
박석흥 대전대 문화사학과 겸임교수·명예논설위원
2005-03-01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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