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길 버스에 쪼그리고 앉아 졸린 시선을 창밖으로 던지는 순간, 가로수 한가운데 둥지 튼 까치집이 눈에 들어온다. 그러고 보니 가로수마다 하나씩 까치집을 이고 있다. 지난봄 눈이 맞은 암수 한쌍이 가로수마다 주소록을 새기며 부지런히 보금자리를 만들었으리라. 그래서 시인은 앙상한 가지 사이를 헤집고 내리던 눈이 까치집마저 온통 눈덩이로 단장하던 날 까치집에 나뭇잎 몇장을 덮어주고 싶은 욕구가 치밀어 올랐는지도 모르겠다.
어떤 시인은 ‘저 까치집에 날아들어 밀리고 밀린 잠을 자고 싶다. 그리고 인간으로 깨어나 다시 인간에게 미래의 말을 걸고 싶다.’고 했다. 그런가 하면 어떤 시인은 도심 빌딩 숲 가로수에 자리잡은 까치집에 희뿌연 겨울석양이 비치자 소름돋을 정도의 외로움을 느꼈다고 한다. 도심 재개발지역에 미처 철거되지 않고 방치된 판잣집을 연상한 것일까. 추위가 몰아닥치기 전까지 까치집을 머리에 인 가로수 밑에서 까치가족과 함께 소음을 견디며 끈질기게 자리를 지키던 중년의 노숙자를 떠올린 것일까. 예전에는 늦가을 가지치기를 할 때 까치집도 수난을 당했던 것 같다. 가로수마다 온전히 남아있는 까치집에서 새봄을 그려본다.
우득정 논설위원 djwootk@seoul.co.kr
어떤 시인은 ‘저 까치집에 날아들어 밀리고 밀린 잠을 자고 싶다. 그리고 인간으로 깨어나 다시 인간에게 미래의 말을 걸고 싶다.’고 했다. 그런가 하면 어떤 시인은 도심 빌딩 숲 가로수에 자리잡은 까치집에 희뿌연 겨울석양이 비치자 소름돋을 정도의 외로움을 느꼈다고 한다. 도심 재개발지역에 미처 철거되지 않고 방치된 판잣집을 연상한 것일까. 추위가 몰아닥치기 전까지 까치집을 머리에 인 가로수 밑에서 까치가족과 함께 소음을 견디며 끈질기게 자리를 지키던 중년의 노숙자를 떠올린 것일까. 예전에는 늦가을 가지치기를 할 때 까치집도 수난을 당했던 것 같다. 가로수마다 온전히 남아있는 까치집에서 새봄을 그려본다.
우득정 논설위원 djwootk@seoul.co.kr
2005-01-20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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