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서울대 개혁을 위하여/김진석 인하대 철학 교수

[열린세상] 서울대 개혁을 위하여/김진석 인하대 철학 교수

입력 2005-01-07 00:00
수정 2005-01-07 08:06
  • 기사 읽어주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댓글
    0
지난 몇 년간의 논의를 통해 서울대가 심각한 문제로 부각되기는 했다. 성적순으로 학생을 입도선매하는 서열체제의 정점에 있는 서울대 학부를 해체하거나 폐지하자는 논의도 있었고, 서울대를 전체 국립대의 네트워크 안으로 묶은 후에 개방하자는 논의도 있었다. 특히 학부를 개방하되 대학원중심대학으로 변모시키는 방식은 여러 장점이 있어서 나도 적극 주장했었다.

그러나 서울대 학부의 개방이나 해체는 사실 현재 시점에서 힘들 듯하다. 여러 이유가 있는데, 서울대 구성원들이 강력하게 반대한다는 이유는 생각보다는 사소하다. 중요한 이유들은 다른 데 있다. 세계적으로 지적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는 상황인 만큼 엘리트 교육의 필요성을 쉽게 부인하기 어렵다는 이유도 그중 하나다. 대학들의 경쟁력 순위가 국제적으로 발표되는 판에, 그나마 가장 경쟁력을 갖추었다고 여겨지는 서울대를 해체하기 어려울 것이다. 다른 중요한 이유도 있다.

지난해 명문 사립대 수시모집에서 일종의 고교등급제 덕택에 강남권 학생들이 특혜를 받았다는 의혹이 있었고, 사회적 비판과 비난이 들끓었다. 여기서 알 수 있듯이 아무리 국립서울대 문제를 부분적으로 정리한다고 하더라도, 연고대를 비롯한 사립대학들이 발 빠르게 교육의 자본화를 부추길 것이 뻔하다. 사립대학들이 강남권 학생들을 모조리 빨아들이는 데서 생기는 사회적 폐해는 현재 서울대가 유발하는 그것보다 더할 것이다.

이런 이유로 나는 서울대 문제를 오로지 국립대 네트워크 차원에서 해결하는 시도에 회의적이다. 교육 공공성의 관점도 중요하지만, 지식 경쟁력의 관점도 그 못지않게 중요하다. 이 두 가지 요구를 다 충족시키는 방법이 없을까? 서울대 입학정원의 획기적 축소는 실현가능성도 상대적으로 높을 뿐 아니라, 거부하기 힘든 대의를 확보하고 있다. 이 경우 서울대 출신들이 고위직을 독과점하는 데서 오는 사회적 폐해를 대폭 줄일 수 있다. 또 학부를 기초학문 중심으로 편성하고 대학원은 직업중심으로 편성함으로써, 기초과학 육성이라는 국립대 본연의 취지도 살릴 수 있고 성적우수학생들의 서울대 집중도 막을 수 있다.

현재 학부에 있는 경영대, 법대, 사범대 등을 전문대학원으로 옮길 경우, 학부 정원을 크게 줄일 수 있을 뿐 아니라 전문대학원 체제로의 변화라는 목표에도 맞는다.

이 점에서 나는 정운찬 총장의 과감한 결단을 촉구한다. 그는 경제학자로서 기회 있을 때마다 기업들의 구조조정을 요구했다. 그런 그가 막상 서울대를 구조조정하는 데에는 머뭇거리고 있다. 서울대 정원이 내년에는 조금 줄어 3200명 정도 되고, 교육부도 2007년까지 국립대 정원의 10% 축소를 요구하고 나섰지만, 이 정도로는 턱도 없다. 미국 일류 대학들의 학부정원이 1500명 정도라는 것은 정 총장도 안다. 획기적 정원 축소를 거부한 채 서울대의 경쟁력을 말하는 것은, 사회적 기만에 가깝다. 가뜩이나 초중등교육예산에 비교해 형편없이 적은 대학예산을 서울대가 계속 독식하게 내버려둔다면, 고등교육은 피폐를 면치 못할 것이다.

지난해 강원도가 서울대 유치를 공개적으로 신청했었다. 서울집중의 문제점에 주의를 환기시켰다는 점에서 나름대로 의미 있는 시도였지만, 학부 정원을 줄이지 않는 한, 지방이전은 예산 차원에서 거의 불가능할 뿐 아니라 이전의 효과도 거의 없다. 마찬가지로 행정도시 건설도 최고 수준의 대학이 확보되지 않는 한, 효과가 의심스럽다. 프랑스의 국립 그랑제콜들이 엘리트교육을 하면서도 사회적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는 중요한 이유는 정원이 100명 안팎이기 때문이다.

언론들은 서울대 대학원이 정원에 미달되었다는 사실을 위기인 양 호들갑스럽게 보도하곤 하는데, 이런 보도는 무책임하고 공허하다. 대학원정원도 과잉 상태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서울대 개혁은 한국 사회 시스템 개혁의 중요한 고리를 이룰 뿐 아니라, 교수로 대표되는 지식인들의 태도변화를 위해서도 필요하다. 외부에 대해서는 허구한 날 개혁을 촉구하곤 하는 그들이 정작 지식생산체제 자체를 혁신하지 못한다면, 한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국가의 중장기적 시스템 개혁을 추구하는 대통령과 총리도 이 문제에 깊은 관심을 기울여주길 촉구한다.

김진석 인하대 철학 교수
2005-01-07 39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close button
많이 본 뉴스
1 / 3
유튜브 구독료 얼마가 적당하다고 생각하나요?
구글이 유튜브 동영상만 광고 없이 볼 수 있는 ‘프리미엄 라이트'요금제를 이르면 연내 한국에 출시한다. 기존 동영상과 뮤직을 결합한 프리미엄 상품은 1만 4900원이었지만 동영상 단독 라이트 상품은 8500원(안드로이드 기준)과 1만 900원(iOS 기준)에 출시하기로 했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적절한 유튜브 구독료는 어느 정도인가요?
1. 5000원 이하
2. 5000원 - 1만원
3. 1만원 - 2만원
광고삭제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