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섶에서] 코쟁이/심재억 문화부 차장

[길섶에서] 코쟁이/심재억 문화부 차장

입력 2004-12-14 00:00
수정 2004-12-14 0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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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덮인 농촌 마을은 적요했다. 졸음 내리는 농한기 오후 무렵, 사람들은 뜻밖의 총성에 화들짝 놀라 장지문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맨송맨송 ‘꺼리’를 찾던 꼬맹이들, 한달음에 고샅길을 훑어 소리가 난 뒷산 대숲 어름을 짓쳐올랐다. 그곳에서 나는 ‘코쟁이’ 미국인을 처음 봤다. 엽총을 든 두 명의 미국인, 그들은 옆구리에 꿩 한마리를 대롱대롱 매달고 있었다.

그들은 몰려든 아이들에게 캔디를 던져 주었다. 그러다 우쭐한 기분이 지나쳤는지 그 중 한명이 허공에 대고 냅다 엽총을 갈겼다. 언니 등에 업혀온 두살배기 ‘싯짜’가 놀라 울음을 터뜨린 것은 그 때였다. 어르고 달랬지만 아이는 울음을 멈추지 않았고, 그게 짜증스러웠는지 총을 쏜 미국인이 아이 얼굴에 대고 뭐라 고함을 쳤다. 다들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그들이 킥킥거리며 능선 너머로 사라진 그날 이후, 내게 미국은 ‘캔디’와 ‘엽총’ 두 얼굴로 각인됐다. 더러는 악마도 같고, 어찌 보면 천사도 같은 그 중의(重義)의 얼굴을 떠올리며, 나와 남북, 그리고 세계가 지금 헷갈리고 있다. 참으로 알 수 없는 미국의 완강한 부도덕성이고, 미국이 아닌 모든 존재의 허약한 도덕성이다.

심재억 문화부 차장 jeshim@seoul.co.kr

2004-12-14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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