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섶에서] 흙냄새/심재억 문화부 차장

[길섶에서] 흙냄새/심재억 문화부 차장

입력 2004-12-13 00:00
수정 2004-12-13 00:00
  • 기사 읽어주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댓글
    0
흙냄새를 잊고 산 지 오래다. 봄날, 어쩌다 애들 채근에 밀려 화분 분갈이라도 할 때가 아니면 흙 만질 일이 없다. 그러니 언감생심 냄새이겠는가.

소싯적, 이맘 때면 흙냄새에 묻혀 살았다. 벼를 베어낸 뒤 빈 논을 갈아엎는 쟁기 자국을 따라가다 보면 보습에 동강난 미꾸라지가 지천에 널렸고, 막 새싹을 드러낸 보리밭을 뛰며 연이라도 날릴라 치면 어느 새 바짓가랑이가 흙투성이가 되곤 해 야단을 맞았던 기억은 차라리 일상에 가까웠다. 그 속살 드러낸 흙에서 풍기는 냄새는 바로 생명의 증거, 그것이었다. 모든 곡식이 그 흙에 뿌리내리고 자라 일용할 밥과 찬거리를 생산해 내기 때문이다. 그렇게 자란 사람들이 이제는 내게 그런 시절이 있었냐는 듯 흙을 잊고 산다.

요새 수십층씩 올라가는 주상복합아파트가 인기다. 모두들 선망하는 탓에 프리미엄이라는 것도 소시민들이 생각하기 싫을 정도로 엄청나다. 그러나 곰곰 생각해 보면 그런 엄청난(?) 곳에도 없는 게 있다. 바로 내가 살아 있음을 고맙게 여기도록 깨우치게 하는 대지의 주술(呪術), 흙의 향기다. 어디든 땅의 축복이 없는 곳, 그곳이 바로 사막 아니겠는가.

심재억 문화부 차장 jeshim@seoul.co.kr

2004-12-13 22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close button
많이 본 뉴스
1 / 3
쿠팡 가입유지 혹은 탈퇴할 것인가?
쿠팡이 개인정보 유출 의혹 이후 진정성 있는 사과보다는 사태 축소에 급급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습니다. 지난 30~31일 국회 청문회에서 보여준 관계자들의 불성실한 태도 또한 도마 위에 올랐습니다. 하지만 쿠팡 측은 이러한 논란에도 '탈퇴 회원은 많지 않다'고 발표했습니다. 과연 여러분은 앞으로도 쿠팡 회원을 유지하실 생각입니까?
1. 유지할 계획이다.
2. 탈퇴를 고민 중이다.
3. 이미 탈퇴했다.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