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마당] 성 마르탱과 거지/김욱동 서강대 교수·문학비평가

[문화마당] 성 마르탱과 거지/김욱동 서강대 교수·문학비평가

입력 2004-12-02 00:00
수정 2004-12-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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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당이나 예배당을 뜻하는 영어 ‘채플’이 한겨울에 입는 외투와 어원이 같다고 하면 아마 고개를 갸우뚱할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언뜻 보면 예배당과 외투 사이에는 그야말로 하늘과 땅만큼 큰 차이가 있다. 그러나 이 두 낱말의 어원을 좀더 찬찬히 뜯어보면 흥미롭게도 같은 뿌리에서 갈라져 나왔음이 밝혀진다. 채플의 뿌리를 더듬어가다 보면 중세 영어 ‘채펠레’를 만나게 되고, 더 깊이 더듬어 가면 라틴어 ‘카펠라’와 만나게 된다.

카펠라란 두건이 달린 외투나 망토를 가리킨다. 채플은 본디 4세기 프랑스의 남부 지방 투르에 살았던 수도승이며 주교인 성(聖) 마르탱이 입었던 외투 또는 그 외투를 유물로 보관하던 지성소(至聖所)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그러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외투나 지성소의 의미를 벗어버리고 예배당이나 학교나 병원 또는 군대에 딸린 부속 교회라는 새로운 의미를 얻게 된 것이다.

성 마르탱은 일생 동안 가난한 사람을 위하여 몸을 바친 사제로 유명하다. 평소 자비심과 동정심이 많던 그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물건을 모두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곤 하였다. 어린 시절 군사령관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이탈리아로 간 그는 청년이 되자 이 무렵의 법에 따라 로마 군대에 입대하였다. 군대에 입대한 지 얼마 안 되어 그가 속한 연대는 오늘날의 북부 이탈리아와 프랑스 그리고 벨기에를 포함하는 갈리아의 아미앵에 파견되었다. 날씨가 몹시 추운 어느 겨울날 마르탱은 이 도시의 성문에서 몸에 걸친 것이 거의 없이 추위에 벌벌 떨고 있는 가난한 거지 한 사람을 만난다. 이 불쌍한 거지를 보자 마르탱은 곧 자신이 입고 있던 외투를 벗어 마치 칼로 두부를 자르듯 두 동강을 내어 한쪽은 그에게 주고 다른 한쪽은 자신의 몸에 걸친다. 마르탱이 걸친 반 토막 외투는 뒷날 유명한 성보(聖寶)가 되어 프랑크 족 왕들의 기도실에 보관되었다.16세기 스페인 화가 엘 그레코가 그린 ‘생 마르탱과 거지’는 바로 이 에피소드를 형상화한 작품이다.

그 뒤 마르탱은 군대에서 제대하였고, 평소 종교에 깊은 관심을 두고 있던 그는 제대하자마자 종교에 귀의하여 수도승이 되고 마침내 남프랑스의 투르에 살면서 하느님을 섬기는 사제 노릇을 하며 일생을 보냈다. 소설가 오노레 드 발자크의 고향이기도 한 투르는 로마 시대부터 번영했던 도시였지만 생 마르탱 때문에 더욱더 유명해졌다. 마침내 그는 여든한 살의 나이로 질병에 걸려 사제로서의 삶을 마감하였다. 그의 시체를 석관에 보관하고 그 석관 위에 소박한 예배당을 지었고 뒤에 다시 성당을 건설하였다. 이 성당이 바로 오늘날 기독교인들이나 일반 관광객들에게 명소로 각광을 받고 있는 생 마르탱 성당이다.

그런데 생 마르탱은 살아 있을 때나 사망한 뒤에 여러 기적을 일으킨 것으로도 아주 유명하다. 그 때문에 투르는 순례자들이 자주 찾는 순례지의 메카 역할을 해 왔다. 그리고 뒷날 가톨릭 교회에서는 그를 성인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프랑스 교회에서는 평생 동안 겸손과 사랑의 모범을 보여 준 생 마르탱을 가장 위대한 성인 중의 한 사람으로 높이 우러르고 있으며, 성인전(聖人傳) 작가들은 그가 행한 여러 기적을 후세에 널리 전하고 있다.

세모를 맞이하여 지금 길거리에서는 구세군의 자선 냄비 종소리가 요란하게 울리고 있고, 교회와 성당에서도 크리스마스 장식이 휘황찬란하다.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직장을 잃은 노동자들과 노숙자들이 날이 갈수록 늘어만 간다. 오늘날 교회는 과연 빛과 소금의 직분을 다하고 있는가?



김욱동 서강대 교수·문학비평가
2004-12-02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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