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초등학교로 바뀐 국민학교 6학년때 학교를 옮겼다. 새 학교에서는 매주말에 한 과목씩 시험을 치르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특히 ‘전 과목 100점’을 받는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를 따라가려고 죽어라 공부했지만 평균 97점이나 98점에 그치곤 했다.
매주 보는 시험은 짝끼리 정·오답을 가린 뒤 선생님에게 제출했다. 전학온 지 몇달 후 기말고사를 치렀다. 이번에는 답안지를 거둬가서 선생님이 손수 채점했다.‘100점’ 친구의 평균이 90점을 밑돌았다. 이상하다 싶어 주말시험 채점때 유심히 보니 그 친구의 짝이 답을 고쳐 100점을 만들어 주는 듯했다.
한동안 고민하다가 그냥 넘어갔다.‘밀고자’가 되기 싫었고, 졸업이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그후 이문열의 소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에서 비슷한 얘기를 읽었다. 시험에서 부정행위를 일삼던 엄석대란 학생의 파멸 과정을 그렸다.
모른 척 넘어간 행동이 옳았는지 지금도 판단이 안 선다. 그러나 당시가 공부를 제일 잘했던 시절이라는 생각이 든다.‘전 과목 100점’의 ‘일그러진 영웅’을 따라잡으려던 시기였다.
이목희 논설위원 mhlee@seoul.co.kr
매주 보는 시험은 짝끼리 정·오답을 가린 뒤 선생님에게 제출했다. 전학온 지 몇달 후 기말고사를 치렀다. 이번에는 답안지를 거둬가서 선생님이 손수 채점했다.‘100점’ 친구의 평균이 90점을 밑돌았다. 이상하다 싶어 주말시험 채점때 유심히 보니 그 친구의 짝이 답을 고쳐 100점을 만들어 주는 듯했다.
한동안 고민하다가 그냥 넘어갔다.‘밀고자’가 되기 싫었고, 졸업이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그후 이문열의 소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에서 비슷한 얘기를 읽었다. 시험에서 부정행위를 일삼던 엄석대란 학생의 파멸 과정을 그렸다.
모른 척 넘어간 행동이 옳았는지 지금도 판단이 안 선다. 그러나 당시가 공부를 제일 잘했던 시절이라는 생각이 든다.‘전 과목 100점’의 ‘일그러진 영웅’을 따라잡으려던 시기였다.
이목희 논설위원 mhlee@seoul.co.kr
2004-11-24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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