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사회의 응집성이 걱정이다/이성규 서울시립대 사회정책학 교수

[열린세상] 사회의 응집성이 걱정이다/이성규 서울시립대 사회정책학 교수

입력 2004-09-03 00:00
수정 2004-09-03 0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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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전에 영문학을 하시는 한 선배교수께서 퇴임하셨다.전공분야도 달라서 자주 뵙지 못하던 분이었지만 퇴임식 자리에서 힘주어 말씀하시던 내용은 필자에게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하였다.그중 한 가지는 영국에 관한 것인데 스코틀랜드,잉글랜드,웨일스 등 다양한 문화적 배경과 욕구수준을 갖고 있으면서도 영국은 나라를 조화롭게 경영하고 있으며 국제적으로 산술적인 총합을 넘어서는 정치경제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말씀이다.또한 국왕과 계급제를 유지하면서도 자유와 평등을 절묘하게 조화시켜나가고 있다고 하셨다.반면에 우리는 단일문화,단일민족이라는 습성에 포획되어 남을 인정하지 못하고 나만의 세계에 빠져 반목하고 질시하는 행태가 만연하게 되었다고 가슴아파하시는 듯했다.특별히 새로운 내용은 아니었지만 요즈음의 어려운 경제에 대한 해결방법,과거사정리,국가보안법의 개정·폐지 논쟁 등을 둘러싼 정치세력간의 분리주의적인 대응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불안감이 노교수의 가슴과 머리에서 정리되면서 전공하신 문학말씀 대신 사회비평을 하시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이 어수선하다고들 한다.얼마 전 아침에는 미국에 사는 친구가 최근 한인타운의 부동산시장이 활황인데 투자할 생각이 없느냐는 제안을 하더니 저녁에 만난 어느 장애인부모는 한창 일할 40대말에 아이 교육을 위하여 캐나다로 이민가기 위하여 집을 내놓았는데 팔리지 않아 걱정이라고 했다.어딘가 나라가 잘못되어 가도 한참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국가와 사회의 건전운행을 위하여 절대적으로 요구되는 사회의 응집성이 급격히 이완되는 것 같다.여야로 깔끔하게 나눌 수도 없을 만큼 이념과 지역이 뒤엉켜 짜여진 우리의 정당구조에서 생성되는 정치세력간의 불신과 피해의식,기업주와 노동자 그리고 정부간의 불신,인터넷세대와 기성세대간의 상호 의구심 및 불신,국내의 확실성을 버리고 외국의 불확실성을 택하면서까지 기업과 자금을 해외로 들고 나가는 이들의 현실부정 등의 뿌리까지 파고들어가 근저에 도사리고 있는 원인을 제대로 진단해야 할 때라는 긴박감마저 든다.

여러 의견이 있겠지만 자기주장을 하는 각각의 주체 간에 소통이 단절된 것이 가장 큰 원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인터넷 광장에서 기성의 질서와 다른 ‘동굴속의 집회’를 자주 갖는 젊은이들과 그러지 못하는 분들 간의 소통단절,본원적 권력의 주체가 변한 후 언론,타 정파,사회구성의 타 세력 간에 형성된 소통단절,장애인·노인 등 소외계층이 느끼는 사회적 절벽감,기업하는 사람들이 공권력과 정책 앞에서 느끼는 무력감,분배론의 힘을 빼는 현실경제 앞에서 노동운동세력이 체험하는 무의미감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지점에서 소통의 장애가 누적되고 있다.이것이 결국은 국민 전체가 공적 공간의 사회인이라는 공유의식을 상실케 하고 있는 것 같다.개인들이 각자가 파놓은 논리적 참호에서 나와 공적 공간의 일원으로서 참여하는 소통의 장들을 많이 만들어야 한다.이해가 서로 다른 ‘현존하는 타자’들이 한자리에서 긴장을 유지하며 어떠한 결론을 도출시켜 나가는 장들을 자연스럽게 만들어 가자는 것이다.어쩌면 국민의 대표기구인 국회에 ‘나라소통위원회’같은 것을 두고 이 나라의 힘을 빼고 있는 소통장애를 진단하고 치유를 위한 제도를 수립하는 것이 가장 시급한 것일 수도 있을 것 같다.대통령산하에 각종위원회들이 활동하고 있으나,본원적 권력은 그 속성상 편안한 사람들끼리의 참여를 지향하는 경향이 있어 외부에 동업으로 비쳐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이를 위하여 사회의 어른들이 나설 때가 된 것 같다.

퇴임식장을 나가시던 노교수의 뒷모습은 마치 ‘혼자서만 거주하는 세계를 건설하려는 인간은 인간의 속성을 상실한,차라리 신과 같은 존재다.’라고 역설하고 있는 아렌트의 진지한 얼굴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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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규 서울시립대 사회정책학 교수

2004-09-03 3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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