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섶에서] 여름나기/손성진 논설위원

[길섶에서] 여름나기/손성진 논설위원

입력 2004-07-26 00:00
수정 2004-07-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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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어컨이 없는 도시의 여름은 상상할 수 없다.찬바람 만드는 기계가 억지로 온도를 끌어내려 줘야 일도 하고 밥도 먹을 수 있다.에어컨이 뿜어낸 더운 기운은 밖으로 쏟아져 뜨거운 대기를 더욱더 달군다.그래서 도시인들은 외출을 꺼리고 인공 냉기 속으로만 파고든다.

어릴 적 시골의 피서지는 당산나무 그늘이었다.둘레가 다섯 아름이 넘는,600년 묵은 느티나무 아래 돗자리를 깔고 눕는다.우거진 가지와 잎사귀에서 불어오는 산들바람의 그 시원함.할아버지가 입던 철사로 엮은 옷은 참으로 신기했다.삼베옷 속에 ‘철사옷’을 입으면 옷이 달라 붙지 않고 바람이 몸속으로 솔솔 들어온다.

맑디맑은 시냇물에선 아이들이 물장구를 치며 멱을 감는다.깊은 물속으로 들어가면 메기며 송사리가 손에 잡힐 듯 돌아다닌다.그래도 더우면 얼린 듯이 차가운 우물물로 ‘엇 차거,엇 차거.’하면서 등목을 하고 나면 더위는 저만치 물러가 버렸다.밤이 되면 생초를 모아다 모깃불을 피운다.별이 쏟아지는 하늘에서 별자리를 찾다 할머니의 부채질에 스르르 잠이 든다.그렇게 여름은 지나갔다.

손성진 논설위원 sonsj@seoul.co.kr

2004-07-26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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