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섶에서] 장마/심재억 문화부차장

[길섶에서] 장마/심재억 문화부차장

입력 2004-06-30 00:00
수정 2004-06-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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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해,장마는 길었다.5월말,보리도 거두기 전에 시작하더니 한달이 넘게 비를 뿌려댔다.두렁까지 잠긴 논에는 이종(移種)한 모가 둥둥 뜨고,산밭에는 새로 도랑이 생겨 어린 싹을 쓸어갔다.하릴없이 하늘만 쳐다보던 ‘어매’,‘아배’의 속은 가물 때보다 더 아리게 타들었다.

이른 오후,먹장구름 속으로 여우볕이 들자 서둘러 산밭으로 나가신 어머니는 땅거미가 내리도록 돌아오시지 않았다.여문 빗줄기는 텃밭 토란잎에 수은처럼 고이고,막초를 마는 아버지의 눈길은 울너머 보이지도 않는 산밭 어름에 머물곤 했다.기다리다 안달이 난 어린 아들,도롱이를 쓰고는 냅다 산밭으로 내달았다.맹꽁이만 앙앙대는 고즈넉한 산발치.

그때까지 어머니는 빗물에 쓸려내린 참깨밭 물길을 호미로 메우고 계셨다.얼굴 주름을 따라 빗물이 또다른 내를 이루고,그 모습에 목이 멘 아들,흙 범벅인 어머니 손을 잡아 끌 때,그 때 어머니가 하신 말씀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남들은 우골탑도 쌓는다는데,몸으로 때우는 일 뭔들 못하겠느냐?” 젖은 풀잎을 털며 돌아오는 길,여윈 어머니 등 뒤에서 자꾸만 울음을 삼켰던 어릴 적 장마의 기억.

심재억 문화부차장 jeshim@seoul.co.kr˝

2004-06-30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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