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외교부 초청으로 중국대륙 여러 곳을 돌아보았다.덩샤오핑(鄧小平)의 개혁정책이 시작된 지 25년.‘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黑猫白猫論).’‘사회주의,자본주의 관계없이 중요한 것은 누가 인민을 잘 살게 만드느냐는 것(姓社姓資)’등의 논리로 무장해온 이들이다.지금 이들에게 중국공산당은 과연 무슨 의미를 가질까.하지만 많은 관리와 공산당원,일반시민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이 질문은 너무도 한심한 우문이 되고 말았다.
이기동 논설위원 이기동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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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동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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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중국인들의 머리와 가슴속을 지배하는 것은 오직 하나,바로 경제발전이다.그들은 자기들이 추구하는 경제발전을 여전히 사회주의 시장경제라고 말한다.하지만 그것은 빈부격차를 수용하고 경쟁이 발전의 동력이라고 믿는 사회주의다.이 새로운 사회주의에 대해 덩(鄧)은 수많은 어록을 남겨 놓았다.‘빈곤이 사회주의가 아니다.’‘일부 사람을 잘 살게 해야 나머지가 분발한다.’‘시장경제는 자본주의의 전유물이 아니다.’ 등등.덩샤오핑의 이 말들은 지금 금과옥조가 돼있다.
중국공산당은 여전히 6700만명의 당원을 거느린 정당이다.하지만 당의 최대 목표는 이전처럼 모두가 잘 사는 사회주의 건설이 아니라 빈부를 따지지 않고 국가의 부를 키우는 것으로 바뀌었다.덩의 위대함은 평등 이데올로기에 젖은 인민들을 미몽에서 깨우지 않고는 개혁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일찍이 깨달은 데 있다.중국공산당은 지금 첫째 목표를 국가의 경제발전 지원에 두고 있는 전혀 다른 공산당으로 바뀌었다.
중국 관리들은 세 가지의 금기(禁忌)를 갖고 있다.공산당,타이완,그리고 중국경계론이다.힘들게 이룬 발전을 수포로 돌릴 사회혼란을 막아주는 유일세력이 바로 공산당이라고 그들은 믿는다.
타이완은 전쟁의 기억과 연결돼 있다.중국경계론은 새롭게 등장한 금기사항이다.만나는 이들마다 서방학자들이 제기하는 중국경계론의 허구에 대해 열변을 토한다.1인당 GDP 1000달러를 겨우 돌파해 사회주의 초기발전단계에 들어선 중국이 감히 미국에 대적한다는 것은 꿈도 못 꾼다는 것이 요지다.
이때 내세우는 목표가 바로 1인당 GDP 3000달러의 샤오캉사회(小康社會)건설이다.연간 7%이상의 고속성장을 지속할 경우 2020년이면 도달된다는 초기 부유사회다.그리고 그들은 이 목표가 미국정부,미국기업들의 협조와 도움 없이는 불가능한 것임을 너무도 잘 안다.미국과의 협력관계를 외교의 최우선 정책목표로 세운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재능을 감추고 때를 기다린다(韜光養晦).’‘매사에 정면대응 않고,패권을 추구하지 않는다(不當頭,不稱覇).’의 외교정책노선이다.
에드거 스노가 대장정의 기록 ‘중국의 붉은 별’을 남겼다면, 지금 중국인들은 평등사회 대신 경제대국 건설이라는 ‘푸른 별’을 향해 새로운 대장정을 진행하고 있다.그리고 험한 시행착오 끝에 이들은 마침내 중국호를 중원의 고속도로에 올려놓았다.우리가 그랬던 것처럼,앞으로 15년쯤 더 지난 뒤면 보다 더 자유로운 사회에 대한 욕구가 다시 터져나올지 모른다.현명한 중국인들은 그 이전에 공산당의 명예로운 철수계획(exit plan)을 마련할 것이다.
이들에게 ‘지금 한국민들이 겪고 있는 설움이 미국 패권주의의 결과’라고 외치는 한국 정치지도자의 외침은 이해난이다.1인당 GDP 1000달러를 넘어선 중국이 그 30배가 넘는 미국보다 더 중요한 나라라고 매달리는 한국식 방정식 역시 그들로서는 이해불가다.대립의 리더십으로는 안된다. 중국의 질주를 부러워하며 박수나 치는 초라한 관객의 처지로 우리가 점점 내몰리는 것은 아닌지 불안할 뿐이다.
이기동 논설위원 yeekd@seoul.co.kr˝
2004-06-22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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