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end inside-불황 탈출, 패션이 답이다] ‘위기의 슈퍼甲’ 백화점, 동대문에서 길을 묻다

[Weekend inside-불황 탈출, 패션이 답이다] ‘위기의 슈퍼甲’ 백화점, 동대문에서 길을 묻다

입력 2012-12-15 00:00
수정 2012-12-15 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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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백화점 윤나미 CMD(선임상품기획자)와 김귀금 MD(상품기획자)는 지난해 말부터 동대문시장에서 살다시피했다. 한창 때는 1주일에 4~5차례나 시장에서 새벽을 맞았다. 훑고 다닌 브랜드만 7600개. 입소문이 난 옷가게를 추려 일일이 사장들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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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백화점 영플라자에 있는 동대문브랜드 편집매장 ‘코스(KHOS)’가 고객들로 붐비고 있다.  롯데백화점 제공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백화점 영플라자에 있는 동대문브랜드 편집매장 ‘코스(KHOS)’가 고객들로 붐비고 있다.
롯데백화점 제공
제조업체에 백화점은 늘 ‘갑(甲)’. 하지만 이곳에서는 통하지 않았다. 입점을 권유하면 되돌아오는 건 ‘귀찮다.’는 사장님들의 손사래. 의류 공장을 운영하며 평균 3~4개 매장을 보유한 업주들도 수두룩하다. 연매출 100억원대는 거뜬히 올려서 백화점 얘기에 콧방귀도 끼지 않는 경우가 흔하다.

수 차례 설득 끝에 6개 브랜드를 겨우 ‘모셨다’. 플레이먼트, 비, 란, 어드레스 등 이름도 생소한 브랜드를 한 데 모아 ‘코스(KHOS)’라는 동대문 편집매장을 꾸렸고, 지난 10월 롯데백화점 소공동 본점의 영플라자에 첫선을 보였다. 첫 달 매출은 1억 2000만원. 11월에는 1억 4000만원 실적으로 매출 1위 매장으로 등극했다. 백화점 패션 부문 평균 객단가(10만원대)의 절반도 안 되는 가격으로 올린 매출이기에 관계자들도 놀랐다. 한 달 만에 부산 광복점에 2호점을 냈다. 내년에는 잠실점 또는 영등포점에 들어설 예정이다.

과거 시장이나 길거리 의류가 시중 백화점에 둥지를 튼다는 것은 ‘언감생심’. 그러나 요즘 백화점들은 이들을 잡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다. 왜 그럴까.

가장 큰 이유는 불황이다. 어딜 가나 엇비슷한 제품에 비싸기만 한 백화점에 소비자들은 흥미를 잃고 있다. 젊은 고객 감소로 인한 위기감도 작용했다. 주머니 가벼운 젊은층에게 특히 백화점은 점점 ‘문턱을 넘기 힘든 곳’이 되고 있다. 롯데백화점의 구매회원 구성비 현황을 보면 20대 고객이 2009년 26.7%, 2010년 24.7%, 2011년 23.1%로 점차 줄어 들고 있다. 40~60대 고객은 꾸준히 늘고 있다.

따라서 수년 전까지 차별화를 추구한다며 똑같은 명품 브랜드와 SPA를 들여와 ‘닮은꼴’이 돼버린 백화점들은 이제 진짜 차별화를 위해 기성 제품에서 볼 수 없는 신선함과 개성미를 갖춘 시장브랜드에 눈독을 들이기 시작한 것이다. 신세계백화점도 지난해부터 연 2회 ‘신진 디자이너 패션 페어’를 열고 청담동, 가로수길 등에서 활동하는 디자이너를 발굴하고 있다. 최근 신진 디자이너 박람회를 열어 8개 브랜드를 선정해 멘토링 프로그램을 진행 중이다.

일본, 중국, 동남아 등에서 온 바이어들은 동대문시장을 보며 “이곳이야말로 SPA(제조·유통 일괄 브랜드)의 메카”라고 환호성을 지르곤 했다. 신세계백화점 관계자는 “‘동대문 또는 길거리 브랜드’라는 말보다 ‘장인 브랜드’라는 말이 더 어울릴 정도로 실력들이 뛰어나다.”고 말했다.

신진 디자이너들 힘은 매출에서도 확인됐다. 신세계백화점에서 10월까지 여성의류 매출은 지난해보다 5% 늘어나는 데 그쳤지만 길거리 브랜드 매출은 28% 늘었다. 정건희 신세계백화점 패션연구소 상무는 “품질은 높지만 인지도가 낮은 신진 디자이너를 지속적으로 발굴해 해외 명품 못지않은 브랜드로 키울 것”이라고 말했다.

홈쇼핑 업체들도 저가 이미지 탈피를 위해 정상급 디자이너 모시기에 열심이다. 지난달 13일 홈쇼핑업체 GS숍이 내보낸 패션 브랜드 ‘에스제이 와니’의 첫 방송. 이날 준비한 라쿤 패딩(29만 8000원)과 라쿤 베스트(39만 8000원), 패딩코트(17만 8000원) 등 세가지 제품이 모두 완판됐다. 16억원 매출에 예정시간(70분)보다 10분 일찍 막을 내렸다. 1분에 평균 2700만원어치씩 팔린 셈이다.

GS숍 자체브랜드(PB) 제품보다 20~30% 비싼 데도 불티나게 팔린 이유는 정상급 디자이너 손정완씨의 ‘작품’이기 때문. 손씨의 외투를 백화점에서 사려면 족히 100만원 이상은 지불해야 한다. GS숍은 손씨 외에 유명 디자이너와 협업으로 짭짤한 재미를 보고 있다. 실력파 디자이너 이석태씨와 함께 선보인 가죽 전문 브랜드 ‘칼이석태X로보는’의 가죽 재킷(39만 8000원)은 첫 방송에서 16분 만에 1600벌이 모두 매진됐다. 강동준과 함께 만든 울 전문 브랜드 ‘쏘울’에서 내놓은 20만원대 메리노울 코트는 주부들 마음을 급하게 만들기도 했다.

CJ오쇼핑도 지난해와 올해에만 6명 중견 디자이너를 영입했다. 이들 브랜드가 올린 누적 매출액은 300억원대. 올해 전체 패션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20%에 이른다. 현대홈쇼핑이 ‘타임’ ‘마인’ 등을 보유한 국내 최대 여성복 업체 한섬을 품에 안은 건 업계 최대 이슈. 유통뿐 아니라 제조에도 뛰어 들어 한층 고급스럽고 색다른 의류를 선보일 수 있는 기반을 갖췄기 때문이다.

홈쇼핑들이 패션을 강화하는 이유는 마진(30~50%)이 좋고 구매가 꾸준하기 때문. “프라이팬은 지난달 사면 금방 다시 안 사지만 옷은 이달에도 사고 다음달에 또 산다.”는 게 업계에 떠도는 ‘법칙 아닌 법칙’이다.

박상숙기자 alex@seoul.co.kr

강주리기자 jurik@seoul.co.kr

2012-12-15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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