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숨결을 찾아서] 구 벨기에 영사관

[문화재 숨결을 찾아서] 구 벨기에 영사관

박지윤 기자
입력 2006-09-13 00:00
수정 2006-09-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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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관악구 남현동 1059의13 사적 254호 구 벨기에 영사관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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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이 문화재는 서울시립미술관 남서울분관으로 사용되고 있어 시민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관악구청이 관리하며 인근에 있는 백제요지와 효민공 이경직의 신도비와 함께 관악구의 몇 안 되는 문화재이다.

지하철 2호선 사당역 6번 출구에서 불과 50m쯤 떨어진 이곳을 지나가는 행객들은 건물을 한 차례 훑어보고 간다.

빨간 벽돌로 지은 이 유럽식 건물은 현관 앞 두 개 돌기둥과 발코니에 길게 늘어선 돌기둥이 장식품 역할을 해 전체적으로 수려한 느낌을 준다. 서울대 건축과 전봉희 교수는 “외교권을 박탈당한 1905년 을사조약 이전까지는 유럽식 건물도 들어섰지만 그 뒤엔 일본식으로만 짓게 했다.”면서 “구 러시아 공사관 등과 함께 남아 있는 몇 안 되는 유럽식 건물”이라고 설명했다. 구 벨기에 영사관은 원래 중구 회현동 2가 72의2에 있었다. 그러던 것이 1982년 남현동으로 옮겨졌다. 현재 우리은행으로 합병된 상업은행은 1970년 본점을 신축하기 위해 영사관이 있던 부지를 사들였고 1982년 착공을 하면서 영사관을 옮겼다.

원래 영사관이 있던 곳은 조선시대 영의정을 지낸 문익공 정광필의 집터였다. 이 집안에서만 12명의 정승이 배출돼 명당 자리로 유명하다. 상업은행이 이 부지를 매입한 데는 이 점도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영사관 건물 소유자는 여러 차례 바뀌었다. 영사관으로 쓰인 것은 1919년 벨기에 영사관이 충무로 1가로 이전하기 전 1918년까지이다. 그 뒤 요코하마 생명보험회사, 일본 해군성 무관부 관저로 쓰였다. 광복 후 1970년까지 해군 헌병대 청사였다.

1982년 이전된 뒤 관리가 안 돼 민원이 자주 발생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시민들이 좋아하는 공간으로 바뀌었다. 서울시립미술관 남서울분관 관계자는 “2004년 이명박 전 시장이 우리은행 고위관계자와 만난 자리에서 전시 공간이 부족하다는 말을 하자 우리은행 측이 이를 서울시에 무상임대해 미술관으로 쓰이게 됐다.”고 미술관이 된 배경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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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윤기자 jypark@seoul.co.kr
2006-09-13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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