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 1세대 출신 보수 대표 金

조중헌 기자
조중헌 기자
입력 2025-05-05 01:48
수정 2025-05-05 0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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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수는 누구인가

김문수가 걸어온 길
전태일 사건 계기 노동운동 시작
김영삼 권유로 민주자유당 입당
국회의원 3선·경기지사 재선 성공
尹정부 고용부 장관… 정치적 재기
선명성과 높은 정책 이해도 강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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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수 국민의힘 대선 후보는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국면에서 보수 진영의 대표 주자로 떠올랐다. 김 후보는 ‘운동권 1세대’에서 ‘아스팔트 우파’까지 좌와 우를 넘나들었다.

지난해 12월 11일 열린 국회 ‘비상계엄 긴급 현안질의’는 김 후보에게 찾아온 ‘별의 순간’으로 불린다. 당시 “국민에게 사죄하라”는 서영교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요구에 김 후보는 일어서서 고개 숙인 다른 국무위원들과 달리 혼자 꼿꼿하게 앉은 대조적인 모습을 보이며 보수층의 이목을 끌었다. 김 후보의 강점으로는 보수 진영 주자로서의 선명성뿐 아니라 높은 정책 이해도가 꼽힌다.

1951년 경북 영천에서 4남 3녀 중 여섯째로 태어난 김 후보는 넉넉지 않은 환경에서 자랐다. 서울대 경영학과에 입학한 김 후보는 ‘전태일 분신 사건’을 계기로 노동운동에 나섰다. 그는 1971년 전국학생시위와 1974년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민청학련) 사건으로 두 차례 제적됐다. 1986년에는 5·3 인천 민주항쟁을 주도한 혐의로 체포돼 2년간 수감됐다.

김 후보는 1990년 노동운동 세력과 함께 민중당을 창당했으나 14대 총선에서 당선자를 내지 못했다. 구소련 붕괴 이후에는 보수로 전향했고 1994년 김영삼 전 대통령의 권유로 민주자유당에 입당했다. 이후 1996년부터 내리 3선 국회의원을 했고 2006년에는 경기지사에 당선된 뒤 재선까지 성공했다.

2012년엔 ‘박근혜 대세론’ 속에 치러진 새누리당 18대 대선 경선에서 2위를 기록했다. 2014년에는 새누리당 보수혁신특별위원장을 맡아 당 혁신에 앞장섰다.

20대 총선에서 대구 수성갑으로 내려간 김 후보는 김부겸 당시 민주당 후보와의 맞대결에서 패배했다. 2018년 지방선거에서는 서울시장 후보로 나섰지만 탄핵 여파로 인해 또다시 고배를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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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김 후보는 태극기 집회 단골 연사로 나서며 반문(반문재인) 최전선에서 활동했다. 야인 생활을 하던 김 후보는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뒤 경제사회노동위원장·고용노동부 장관을 지내며 정치적 재기의 발판을 마련했다.
2025-05-05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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