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의 사회면] 동심(童心) 울린 치맛바람

[그때의 사회면] 동심(童心) 울린 치맛바람

손성진 기자
입력 2019-05-05 23:16
수정 2019-05-06 0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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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즙 재판에서 승소한 학부모들이 서울시 교육위를 찾아가 자녀들의 입학을 요구하고 있다는 신문기사(경향신문 1965년 4월 3일자).
무즙 재판에서 승소한 학부모들이 서울시 교육위를 찾아가 자녀들의 입학을 요구하고 있다는 신문기사(경향신문 1965년 4월 3일자).
뜨거운 교육열은 ‘일류병’을 만들고 일류병은 치맛바람으로 이어졌다. 학부모들은 학교를 제집 드나들 듯했고 학부모와 교사 사이에 음성적 돈거래가 성행했다. 교육 당국이 음성 수입의 다과에 따라 초등학교를 특A, A, B, C, D 다섯 등급으로 나눌 만큼 대놓고 촌지를 주고받았다. 부유하고 적극적인 학부모는 대의원을 맡아 계를 만들고 돈을 모아 교사에게 공짜 곗돈을 전달했다. 돈이 없는 학부모도 자식을 위해 울며 겨자 먹기로 돈을 내지 않을 수 없었다.

1학년과 6학년 담임이 인기였는데 그 학년 담임을 맡으려고 교사들끼리도 돈거래를 했다고 한다. 소풍 때 어느 여교사는 핸드백을 열어 놓고 학부모와 인사를 했다(경향신문 1965년 4월 5일자). 어느 교사는 학부모가 참관하는 성적 발표날에는 평소 들고 다니던 것보다 더 큰 핸드백을 들고 나왔다.

치맛바람은 온갖 잡부금을 만들어 냈다. 1960년대 초에 생긴 기성회비는 원래 교실난 해소를 위한 모금 성격이었다고 한다. 이것이 변질돼 ‘박봉의 선생님’을 돕자는 ‘후생비’를 거두기 시작했다. ‘담임교사 환영비’라는 것도 있었다. 일부 학부모들은 “성의는 돈의 액수에 정비례한다”는 어처구니없는 말로 경쟁적으로 돈을 냈다. 가난한 집 부모들은 가슴에 멍이 들었다. 서울 영등포의 K초등학교에서는 학부모 대의원들이 집집이 돌아다니며 교사 생활보조금을 매월 거두고 다녔다고 한다(동아일보 1965년 11월 11일자).

정부 고관 자녀가 많았던 서울 D초등학교에서는 고관이 교장과 담임의 인사이동에까지 관여했다. 어느 문교장관은 자식이 일류 중학교에 떨어지자 다른 일류 초등학교 6학년에 재입학시켜 이듬해 기어이 합격시켰다고 한다. 어느 사립학교 교장이 출국할 때 학부모 100여명이 아이들 손을 잡고 김포공항에 나가 손을 흔들며 열렬히 환송했다(경향신문 1966년 6월 20일자). 치맛바람은 중학교 입학시험제와 관련이 있었다. 치맛바람의 극치는 1965년의 ‘무즙파동’이었다. ‘무즙’을 오답처리 하는 바람에 일류 중학교에 낙방했다고 주장하는 학부모들이 교육감 집 안방까지 들어가 농성을 벌였다.

교사들은 노골적으로 촌지를 요구하며 스스로 교권을 추락시켰다. 강원도 속초의 어느 교사는 치맛바람을 비판했다가 학부모들로부터 집단폭행을 당했다. 대구에서 시작된 ‘6학년담임헌장운동’이 확산되며 교사들도 자성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도서 지역 교사들은 ‘벽지교사헌장운동’을 벌였다. 치맛바람은 중학교와 고등학교 평준화로 수그러드는 듯했지만 지금까지도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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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성진 논설고문 sonsj@seoul.co.kr
2019-05-06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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