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다고 썼다가 지우고 나니
사과꽃 피었습니다
보고 싶다고 썼다가 지우고 나니
사과꽃 하얗게 피었습니다
하얀 사과꽃 속에 숨은 분홍은
우리가 떠나고 난 뒤에
무엇이 되어 있을까요
살면서 가졌던 꿈은
그리 큰 게 아니었지요
사과꽃 같이 피어만 있어도 좋은
꿈이었지요
그 꿈을 못 이루고 갈 것만 같은
늦은 봄
간절하였다고 썼다가 지우고 나니
사과꽃 하얗게 지고 있습니다
***
어린 시절 사과꽃을 처음 보았지요. 경주로 가는 수학여행 버스 안이었습니다. 사과꽃이 날려 천지사방이 은빛의 비단 폭으로 술렁였습니다. 그 버스 안에서 처음으로 나는 어디로 가는가 생각했지요. 살면서 내가 가졌던 꿈도 그리 큰 게 아니었습니다. 작은 섬마을 학교에서 국어 선생님을 하며 아이들과 함께 시 읽고 시 쓰며 살고 싶었습니다. 아침이면 떠오르는 햇살 속에 종이배를 접고 물살들이 종이배를 바다 가운데로 밀고 가는 모습 보고 싶었지요. 그 꿈 이루지 못했습니다. 해마다 사과꽃 피었다 집니다. 나는 어디로 가는가, 지금도 생각해요. 초라해지고 쓸쓸해집니다.
곽재구 시인
2019-04-12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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