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준의 시간여행] 개미마을의 봄

[이호준의 시간여행] 개미마을의 봄

입력 2017-04-11 18:00
수정 2017-04-11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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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준 시인·여행작가
이호준 시인·여행작가
지하철 3호선 홍제역을 출발한 마을버스를 타고 10분쯤 달렸을까? 어느 순간부터 버스가 숨을 헐떡거린다. 급경사가 시작된 것이다. 창밖의 풍경도 조금씩 채색을 바꾼다. 언제 도심을 지나왔느냐고 시침 떼며 묻듯, 납작하게 엎드린 집들이 강낭콩처럼 박혀 있는 풍경이 이어진다.

여기는 서울시 홍제동의 언덕바지에 자리 잡은 개미마을. 이제는 서울에서 보기 드문 달동네다. 이곳을 찾는 사람은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간 것 같은 착각에 빠지기 십상이다. 말 그대로 시간여행이다.

하루가 다르게 세상을 바꾸는 시간이, 개미마을에서는 벽마다 박제된 채 걸려 있다. 텅 빈 골목에는 병아리 닮은 노란 햇살이 게으르게 뒹굴고 있다. 주민들은 모두 일터에 나갔는지 안 보이고, 젊은 남녀 몇 명만 낯선 나라에 온 듯 이리저리 카메라를 들이댈 뿐이다.

개미마을의 유래는 6·25 전쟁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휴전 후 폐허 속을 헤매던 사람들이 이 언덕에 올라가 천막을 치거나 판자를 엮어 바람을 피하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형성됐다.

처음에는 ‘인디언촌’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옹기종기 들어선 천막이 서부영화에 나오는 인디언 마을 같아서였다나? 그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1983년부터는 개미마을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

동네의 중간쯤에서 언덕으로 올라가니 할머니 한 분이 텃밭을 매고 있다. 밭이래 봐야 손바닥만 하지만 거기서 소일도 하고 가족의 부식도 가꾸는 모양이다.

이 동네는 바늘 꽂을 만한 땅도 밭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아! 꽃도 피었다. 집집마다 벽화로만 꽃이 핀 줄 알았더니 밭둑에도 피었다. 여린 손을 내밀고 있는 돌나물 군락에 제비꽃들이 나란히 서서 봄을 노래하고 있다. 대처보다 조금 늦긴 하지만 이곳에도 완연한 봄이 온 것이다.

맨 꼭대기에서 내려다보니 마을 구조는 간단하다. 한가운데로 난 큰길을 중심으로 집들이 양쪽으로 빼곡하게 들어서 있다. 중간중간에는 작은 골목들이 생선가시처럼 가지를 치고 있다. 그 작은 골목의 끝에는 어김없이 가파른 언덕이나 계단이 있다. 어느 계단은 얼마나 길게 뻗어 있는지 그 끝을 가늠하기 어렵다.

언덕 끝까지 차곡차곡 자리 잡은 집들은 형태도 다양하다. 제법 번듯해 보이는 집도 있지만 마지못해 모양만 갖춘 집들이 더 많다. 대개는 세월의 때가 켜켜이 얹혀 있다. 지붕은 요즘 보기 드문 슬레이트가 많다. 원래 기와였던 지붕도, 비가 새다 보니 여기저기 천막으로 메우는 바람에 아예 천막지붕이 돼 버렸다.

이 마을도 ‘재개발이냐 보존이냐 문화특구 지정이냐’를 놓고 갑론을박이 오고 간 지 오래다. 재개발을 주장하는 쪽과 반대하는 쪽이 맞서는 형국이다. 문제는 가파른 산자락이고 용적률 확보가 안 되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재개발을 추진할 만큼 경제적 가치가 없다는 데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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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무엇인들 시간의 덫을 피할 수 있을까. 머지않아 이 마을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어 닥칠 것이다. 아쉽다고 말하면 세상의 흐름을 거스르는 것이겠지? 황금색의 봄 햇살이 ‘누추’를 감싸는 마을을 천천히 벗어난다. 금세 질주하는 차들과 인파 속에서 한없이 작아지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떠나온 마을을 돌아보며 혼자 중얼거린다. 특별한 곳에 다녀온 게 아니야. 고작 몇십 년 전이었다고. 그 시절엔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살았다고….
2017-04-12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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