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촌, 쉰촌… 다시 新촌

신촌, 쉰촌… 다시 新촌

입력 2014-01-04 00:00
수정 2014-01-04 03:33
  • 기사 읽어주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댓글
    0

[커버스토리-신촌의 생로병사]

‘새로운 마을’ 신촌(新村·옛지명 새말터)은 6·25 전쟁의 포성이 멈춘 뒤 새로움을 좇는 젊음의 열정이 늘 넘치던 곳이다. 통기타나 저항연극, 록카페 등 기성 주류 문화에 대항했던 청년문화가 꽃폈다. 하지만 1990년대 후반 이후 신촌은 급격한 노화를 겪었다. 2014년 신촌의 밤거리는 여전히 불야성이지만 문화의 향기는 사라지고 상업 자본의 유혹만 남았다. 더불어 향기를 좇던 ‘꿀벌’(청년)들도 줄었다. 무엇이 신촌을 늙게 했을까. 신촌의 생로병사를 추적했다.

이미지 확대
일제강점기인 1921년 세워진 신촌역은 100년 가까이 같은 자리를 지키며 신촌의 ‘상전벽해’를 지켜봤다. 단출한 복층 건물이던 이 역은 2004년 민자역사로 탈바꿈했고 복합상영관과 쇼핑몰 등이 들어섰다.  서울신문 포토라이브러리
일제강점기인 1921년 세워진 신촌역은 100년 가까이 같은 자리를 지키며 신촌의 ‘상전벽해’를 지켜봤다. 단출한 복층 건물이던 이 역은 2004년 민자역사로 탈바꿈했고 복합상영관과 쇼핑몰 등이 들어섰다.
서울신문 포토라이브러리


이미지 확대
3일 서울 서대문구 연세로를 가득 메운 시민들의 모습.
3일 서울 서대문구 연세로를 가득 메운 시민들의 모습.


“신촌 일대가 온통 호박·배추·오이밭이었어요. 지금이야 상상할 수 없는 일이지만….”

1936년 신촌에서 태어나 떠난 적이 없는 ‘토박이’ 박춘화(78) 창천교회 목사가 지그시 눈을 감고 60년 전 신촌을 회상했다. 서울 신촌동과 창천동, 노고산동 일대를 가리키는 신촌에는 연세대와 이화여대 등 대학들이 자리 잡았지만, 개발 전 서울의 여느 곳처럼 밭과 논뿐이었다. 신촌의 ‘상전벽해’가 시작된 것은 1960년대부터였다. 1950년대까지 명동을 주무대로 삼던 젊은 문인들이 신촌에 모여들면서 문화의 여명이 동텄다.

이미지 확대
소설가인 고(故) 최상규(1994년 별세), 시인 정현종(75) 등 연세대 출신 문인들이 이 지역을 터전 삼았다. 나도삼 서울연구원 선임연구위원(문화·예술 전공)은 “신촌에는 서강대·연세대·이화여대·홍익대 등 여러 대학이 서로 마주 보는 곳에 움푹 파인 형태로 위치했다. 대학생들이 모이기에 적합한 지형”이라고 말했다.

자연스레 청년층을 겨냥한 소비 시장이 만들어졌다. 1970년대 이화여대 입구는 ‘로망’, ‘부르몽’, ‘아카디아’, ‘벵땅’ 등 150개 넘는 양장점이 자리 잡은 ‘패션 메카’였다. 1970년대 젊은이들은 이곳에서 판탈롱바지(나팔바지)와 미니스커트 같은 최신 의상을 사 입었다. 홍석기 서울연구원 연구위원(공간·문화 전공)은 “‘1970년대 당시에는 멋쟁이가 되려면 일단 신촌에 가라’는 얘기가 회자될 정도였다”고 전했다.

신촌의 전성기는 1980년대 들어 열렸다. 서울 중구 세종문화회관 주변 등 도심에 있던 소극장과 연극단이 신촌에 입성하면서 문화가 만개했다. 나 연구위원은 “정권 비판적인 작품을 무대에 올려 권력자에게는 눈엣가시 같았던 연극단들이 1980년대 탄압을 피해 신촌으로 터전을 옮겼다”고 설명했다.

‘신천’, ‘산울림소극장’, ‘연우소극장’ 등 모두 9곳이 신촌에 자리 잡았다. ‘서울의 브로드웨이’라는 별칭이 붙었다. 문화를 즐길 준비가 된 젊은 층이 넘쳐나고 공연할 공간도 생기니 서정적 민중가요를 부르던 노래꾼들이 신촌을 주무대로 삼기 시작했다. 고(故) 김현식의 ‘신촌블루스’, 고(故) 김광석의 ‘동물원’ 등은 신촌의 라이브카페에서 청년 관객들을 만나 함께 호흡하고 교감했다. 특히 1984년 지하철 2호선이 완전히 개통되면서 유입 인구가 크게 늘었다.

1990년 신촌은 ‘X세대’로 불린 신인류의 등장과 함께 절정을 맞았다. 이 시절 신촌을 강타한 문화 아이콘은 ‘록카페’였다. 최근 종영된 드라마 ‘응답하라 1994’에 등장한 ‘스페이스’ 등 록카페들이 밀집했다. 하지만 문화와 유흥의 경계에 있던 업종인 록카페는 신촌 청년 문화의 절정을 보여 준 동시에 쇠락의 전조이기도 했다. 나 연구위원은 “록카페의 매력 덕에 엄청난 청년 소비층을 끌어 모았지만 결국 독약이 됐다”고 분석했다.

‘돈의 맛’을 알게 된 신촌의 지가는 이후 크게 요동쳤다. 전통적 명물들이 땅값을 견디다 못해 문을 닫았다. 이미 1990년대 들어 신촌 소극장들이 명륜동(대학로)으로 떠나가고 있었던 까닭에 신촌의 상업화는 순식간에 진행됐다. 더구나 ‘홍대앞’이라는 대체재가 있었다. 홍대 지역은 ‘클럽’이라는 상징 업종이 있었던 데다 홍익대 미대나 지역의 대형 연예기획사 YG엔터테인먼트 등에서 파생돼 나온 네트워크 덕에 문화적 뿌리가 단단했다. 2002년 한·일월드컵 때 홍대 주변에서 대규모 응원전이 벌어지면서 서울 청년 문화 패권의 무게중심은 이 지역으로 급격히 쏠렸다.

전문가들은 서울시와 서대문구, 지역 상인·시민이 ‘신촌 부흥’에 나선 것을 두고 하드웨어보다 소프트웨어의 변화가 더 급하다고 말했다. 나 연구위원은 “지역 상인들이 새 예술을 얼마나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지가 청년 문화촌 탄생과 번영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말했다. 실제로 고려대 박수정씨가 2012년 낸 석사 논문 ‘서울시 창조계층의 분포 패턴과 입지 특성’에 따르면 영상물과 창작·예술 관련업, 전문디자인업 종사자 등 보헤미안(창조적이고 자유로운 성향의 직업인) 계층은 합정동과 서교동, 연남동 등 홍대 일대에 고루 분포해 있었다. 나 연구위원은 “신촌이 홍대를 따라가려고 하면 부흥하기 어려울 것”이라면서 “개방성과 창조성을 기반으로 독창적 장점을 살려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대근 기자 dynamic@seoul.co.kr

이민옥 서울시의회 행정자치위원회 위원장, ‘서울 자원봉사 컨퍼런스’ 참석… 미래세대 자원봉사 지원 의지 밝혀

서울시의회 행정자치위원회를 이끄는 이민옥 위원장(더불어민주당·성동3)이 지난 18일 종로구 서울글로벌센터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서울 자원봉사 컨퍼런스’ 현장을 찾았다. 서울시자원봉사센터 법인설립 20주년을 맞아 마련된 이번 행사에서 이 위원장은 축사를 맡아 자원봉사가 지닌 사회적 가치를 짚어보고 미래세대를 향한 적극적인 지원 구상을 제시했다. 이번 행사는 ‘미래세대 성장의 힘, 자원봉사’라는 슬로건 아래 오후 2시부터 2시간 반 동안 펼쳐졌다. 현장에는 자원봉사센터를 비롯해 교육청과 대학, 기업 등 유관기관 관계자 150여 명이 자리를 채워 뜻깊은 시간을 함께했다. 이날 행사는 ▲청소년 봉사학습 및 서울동행 청년 봉사의 사회적 성과를 기반으로 한 서울형 자원봉사 정책 제시 ▲교육청·대학·기업 등 영역별 협력을 통한 자원봉사 활성화 방안 도출을 중심으로 진행됐다. 발제에서는 이선미 서울여자대학교 교수가 “왜 지금, 미래세대에게 봉사 경험인가”를 주제로 자원봉사의 교육적 의미와 사회적 가치를 분석했고, 김자옥 서울시자원봉사센터 팀장이 “배움과 성장을 잇는 서울형 미래세대 자원봉사”를 주제로 서울형 정책 방향을 제시했다. 이어진 토론에서는 정진경 광운대 교수를
thumbnail - 이민옥 서울시의회 행정자치위원회 위원장, ‘서울 자원봉사 컨퍼런스’ 참석… 미래세대 자원봉사 지원 의지 밝혀

신융아 기자 yashin@seoul.co.kr
2014-01-04 14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close button
많이 본 뉴스
  • 서울신문 신규가입 & 케찹 인스타그램 팔로우 이벤트
  • 2026 아이치 나고야 아시안게임
  • 1 / 3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