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대한민국 ‘甲중의 甲’

[커버스토리] 대한민국 ‘甲중의 甲’

입력 2013-06-08 00:00
수정 2013-06-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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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들, 모든 특권 누리면서 乙 위한답시고 ‘甲乙법안’ 입법 열올려

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A 의원. 어느 해인가 대법원과 법무부에 신임 판사와 검사들의 프로필을 요구했다. 대법원과 법무부는 출신 지역과 학교 등을 분석하기 위한 것으로 여기고 자료를 건넸다. 그랬더니 “기혼과 미혼을 구분할 수 없으니 미혼자들을 구별해 달라”고 했다. 알고 보니 혼기가 찬 딸의 신랑감을 찾기 위해 신상 자료를 달라고 한 것이었다. 이후 한 남자 판사를 지목해 반강제적으로 맞선 장소에까지 끌어낸 A 의원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투덜댔고, “지방법원 말고 재경지법 판사를 소개해 달라”며 ‘더 잘나가는’ 판사를 추가로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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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의 ‘권능’이 어느 정도인지를 새삼 생각하게 하는 사례다. 국회의원이 우리 사회에서 ‘갑(甲) 중의 갑’으로 꼽히는 이유는 무엇보다 광범위한 업무 영역 때문이다. 대개의 갑을(甲乙) 관계는 특정한 영역에서 제한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연쇄적인 갑을 관계의 구조 속에 포함되기 마련이지만, 국회의원의 업무 영역은 전방위적이어서 어느 관계에서든 우위에 선다. 그 어떤 ‘슈퍼갑’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다.

그 영향력은 중앙정부에서 지방정부, 지방의회에까지 미친다. 장차관을 오라가라 할 뿐만 아니라 호통을 칠 수 있는 권위를 가졌고, 지방의 슈퍼파워인 자치단체장과 또 다른 권력자인 지방의원들의 정치적 생사여탈권인 공천권을 쥐고 있다. 대법원과 법무부를 통해 국가 권력의 또 다른 축인 사법권에까지 위력을 자랑한다.

국회의원들은 종종 ‘연대’ 형식으로 에너지를 통합해 사용하기도 한다. 대표적인 것이 국감이나 청문회, 국정조사 때다. 상임위의 이름으로, 국회의 권능으로 ‘민간인’을 줄줄이 소환한다. 몇 차례 면박을 당해 많이 조심스러워지긴 했지만 아직도 증인석의 민간인을 은근히 겁박하는 장면은 사라지지 않았다. 총수 수십 명을 소환 명단에 올렸다 내렸다 하며 대기업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한다. 이때 이들은 ‘울트라 슈퍼갑’이 된다.

울트라 슈퍼갑 국회의원의 이 같은 우월적 행태를 직접 겪어 본 이들은 요즘 여의도를 휩쓸고 있는 ‘갑을 입법’ 광풍에 쓴웃음을 짓곤 한다. 울트라 슈퍼갑으로서의 우월적 위치는 그대로 누리면서 자신들에게 을인 또 다른 갑을 어떻게 처벌할 것인가에 몰두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어서다. 전문가들은 “갑을 관계법은 궁극적으로는 지나치게 차이가 나는 갑과 을 사이 권리의 폭을 좁히는 일이 돼야 하는데, 지금 국회는 ‘갑에게 어떤 벌을 씌울 것인가’만 고민하고 있는 것 같다”면서 “문제 인식부터 잘못됐는데 기형적인 행태를 바로잡을 수 있겠느냐”고 반문한다.

이상돈 전 중앙대 교수는 “국회의원들이 먼저 갑으로서의 우월적 위치에서 내려온 뒤 공공 분야와 민간기업 등에 그것을 요구해야 맞는 것 아니냐”면서 “그런 것 없이 기업들에 징벌만 내릴 생각을 해서야 문제가 바로잡히겠느냐”고 비판했다.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는 “국회의원들에게 특권을 준 이유는 행정부 견제 과정에서 성역 없이, 신변 보호의 걱정 없이 업무를 수행하라는 취지인데 그 특권이 개인적으로 쓰이고 있어 또 다른 소외감과 박탈감을 양산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갑을 관계법 논의가 한창인 요즘 국회 의원회관 내 세미나실과 관련 의원실은 문전성시다. 여기저기서 은밀하게 ‘잘 부탁한다’는 인사말들이 넘쳐 나고 있다. 울트라 슈퍼갑인 국회의원들의 마음을 잡기 위해 을들이 공연히 바빠지고 있다.

김효섭 기자 newworld@seoul.co.kr

이영준 기자 apple@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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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6-08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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