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은 곳을 향한 따뜻한 자화상

낮은 곳을 향한 따뜻한 자화상

입력 2009-12-18 12:00
수정 2009-12-18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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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의 발길 이어지는 까닭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3층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관람객을 반기는 그림은 루오의 자화상 ‘견습공’이다. 화가에게 자화상은 자신의 예술 철학을 그대로 담아내는 중요한 작품이다. 루오는 54살이던 1925년에 ‘견습공’을 그렸고, 그 해 슈발리에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았다. 하지만 신성한 예술가가 아니라 노동자의 모습으로 자화상을 그릴 만큼 루오는 서민 출신임을 자랑스러워했고, 또 강조하고 싶어했다. 스테인드글라스 공방에서 유리에 자주 손을 베며 일했던 어린 시절의 모습을 성공한 화가가 되어 자화상으로 그려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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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낮은 곳으로 임했던 예수의 얼굴과 일생, 특히 고통받는 신의 모습은 루오가 평생을 걸쳐 그린 주제다. ‘색채의 연금술사 루오’ 전시회에서는 고난의 십자가 길을 걷는 예수의 모습을 담은 판화 연작집인 ‘미제레레’ 58점이 전시된다. 미제레레는 라틴어로 ‘불쌍히 여기소서’란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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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이번 전시에서 소개되는 1933년작 ‘그리스도의 얼굴’은 천 위에 나타난 예수의 얼굴을 담고 있다. 이는 피땀을 흘리며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던 예수의 얼굴을 베로니카라는 여인이 수건으로 닦자 그 얼굴이 그대로 수건에 새겨졌다는 ‘베로니카의 수건’에 대한 신화를 재연한 것이다. 1945년작인 ‘베로니카’도 이번 전시회에서 볼 수 있다. 그림 속 여인은 그의 딸인 이자벨을 많이 닮았다고 한다.

루오는 흔히 종교적인 그림을 그린 화가로 알려졌지만 서커스단과 도시, 자연 풍경 등도 즐겨 그렸다. 1932년에 완성한 대작 ‘부상당한 광대’는 액자 속 그림의 윤곽을 따라 벽에 거는 장식융단인 태피스트리의 점들을 표현하고 있다.

이번 전시회에서 루오의 미공개 작품들이 40년 만에 세계 최초로 한국인들과 만날 수 있었던 사연 뒤에는 완벽주의를 추구한 한 화가의 일생이 담겨 있다.

루오는 1917년 르누아르와 같은 인상파 화가를 대거 발탁했던 화상 앙브루아즈 볼라르와 ‘아틀리에 전체를 구입한다’는 파격적 조건으로 계약을 맺는다.

그러나 1939년 볼라르는 피카소를 만나고 오던 중에 교통사고로 갑자기 세상을 뜨고 만다.

볼라르의 유족들은 작품 소유권을 주장하며 루오의 아틀리에를 잠가버리고 8년여의 지루한 법정싸움 끝에 루오는 700여점의 작품을 돌려받게 된다.

하지만 루오는 이제 나이가 너무 들어 작품을 더 완성하지 못할 것이라며 315점의 작품을 공증인이 보는 앞에서 불태워 버린다. 이런 자신을 두고 루오 스스로도 “나의 성격 중에서 가장 끔찍한 것은 결코 만족할 줄 모른다는 것이다.”라고 했을 정도다. 심지어 도록에 실린 작품들도 덧칠해서 다시 그리곤했다.

루오의 손자이자 루오 재단을 운영하고 있는 장 이브 루오(68)는 “1963년 루오의 아틀리에에 남아 있던 작품들을 프랑스 국가에 기증했는데 당시 가족들이 판단할 때 작품들이 그대로 대중에게 보이면 이해받지 못할 것 같아 비공개 조건을 달았다.”며 “이후 퐁피두 센터에서 작가에 대한 이론적 작업이 완성되는 등 연구 성과가 잇따라 이제는 공개할 수 있다고 판단해 (공개를)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서커스 소녀’ ‘십자가의 그리스도’ 등 14점은 루오가 사망했을 때 아틀리에에 있던 작품으로 이번에 세계 최초로 한국에서 공개됐다.

인간에 대한 사랑과 삶의 고민을 1㎝가 넘는 두터운 마티에르(질감)와 폭발적 색채로 담아낸 루오의 작품은 내년 3월28일까지 감상할 수 있다.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2009-12-18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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