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원 칼럼] 입학사정관제 한국에선 어렵다

[이용원 칼럼] 입학사정관제 한국에선 어렵다

입력 2009-03-19 00:00
수정 2009-03-19 0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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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원 특임논설위원
이용원 특임논설위원
이달 들어 각 대학이 입학사정관제로 선발하는 신입생 수를 크게 늘리겠다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발표했다. 그런 뉴스를 접할 때마다 나는 엉뚱하게도 고려대가 2009학년도 수시모집에서 특목고 학생을 우대했다는 의혹을 기억에서 끄집어내게 된다. 입학사정관제 확대와 ‘고려대 수시모집’ 의혹이 어떻게 연결되기에 두 가지는 쌍둥이처럼 항상 기억 속에 붙어다니는 걸까.

고려대가 지난해 치른 수시 2-2 일반전형에서 일반고 학생은 내신 1∼2등급짜리도 떨어진 대신 외국어고 학생은 7∼8등급이 합격한 사실이 ‘고려대 의혹’의 핵심이다. 학교가 사전에 공지한 대로 내신(교과영역) 90%에 비교과영역 10%를 적용했다면 이같은 결과는 나올 수 없으므로, 학교 측이 고교등급제를 적용해 외고 학생들을 우대했다고들 보는 것이다.

여론에 떠밀려 이 의혹을 조사한 한국대학교육협의회는 지난달 고려대 입시 전형에 문제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고, 고려대 또한 국민을 납득시킬 만한 해명을 내놓지 못한 채 얼렁뚱땅 넘어가려 하고 있다. 하지만 ‘고려대 의혹’은, 전국 16개 시·도교육위원들로 구성된 전국교육자치발전협의회가 그저께 고려대를 상대로 수시에서 떨어진 학생 1인당 1000만∼3000만원의 위자료를 청구하는 손해배상 소송을 냄으로써 법적 판단을 받게 됐다.

‘고려대 의혹’ 사건은 입학사정관제가 이 땅에서는 성공할 수 없는 현실을 뼈아프게 보여준다.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인데, 하나는 ‘대학의 신뢰성’ 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대학입학 기준에 관한 우리 국민의 이중적인 의식 문제이다.

고려대는 자타가 공인하는 명문 사학이다. 그 고려대조차도 스스로 내건 합격 기준을 제대로 지켰다고 국민 앞에 자신 있게 설명하지 못한다. 따라서 국민은 고려대 수시 합격생이 실력이 뛰어난 학생인지, 단지 집안 좋고 돈 많은 집 아이인지 구분할 수 없다. 하물며 ‘전통 명문’인 고려대도 내신과 비(非)내신 성적을 배합한 입시에서 국민 신뢰를 얻어내지 못했는데, 성적은 제쳐두고 ‘잠재적 성장 가능성’만을 평가한다는 입학사정관제 하의 선발 결과가 국민에게 받아들여질까.

입학사정관제를 일반적으로 시행해도 좋을 만큼 이 땅의 대학들은 투명하지도, 공정하지도 않다. 허울 좋은 명목 아래 학교측이 원하는 조건대로 신입생을 뽑는다면 그것은 고교등급제에 기여입학제까지 허용한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그 혜택은 사회 지도층과 부잣집의 자녀에게 돌아갈 터이고, 공부에 목매온 가난한 집 수재는 상대적으로 손해볼 수밖에 없다.

우리 국민정서 또한 입학사정관제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고려대 의혹’의 본질은 학교 측의 불투명한 선발 과정에 있지만, 이에 의문을 제기한 논리는 ‘왜 (내신) 성적 좋은 학생이 떨어져야 하는가.’이다. 겉으로는 점수순으로 아이들을 줄세우는 입시제도가 잘못됐다고 외치면서도 잠재의식에서는 (숫자로 된) 점수야말로 당락의 유일한 기준이 돼야 한다고 믿는 것이다.

반에서 1등 하는 내 아이가 20등 하는 옆집 아이와 같은 대학, 같은 과에 응시했는데 창의력이 뛰어난 옆집 아이만 붙어도 승복하는, 그런 사회가 돼야 입학사정관제는 정착할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사회적 강자를 위한 또 다른 편법으로 작용해 교육 양극화를 더욱 부추기는 수단이 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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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석논설위원 ywyi@seoul.co.kr
2009-03-19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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