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큰 틀에서 진보와 보수라는 이념의 대결, 세대와 지역의 대결이 관통했다. 하지만 당락을 정하는 결정적인 한 방은 적대적 프레임이었다. 개혁진영에만 국한시켰을 때 지난 1987년 후보 단일화와 비판적 지지,1992년 반수구대연합,1997년 DJP연합으로 대표되는 정권교체론,2002년의 반 이회창 연대를 들 수 있다.
이번 17대 대선은 적대적 프레임의 결정판이었다.1년여 동안 ‘반 노무현 VS 반 이명박’ 구도로 치러졌다.‘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의 손우정 연구원은 ‘최악회피 효과’라고 규정했다. 상대방의 부정적 이미지를 극대화해 자신의 부족한 점을 상쇄한다는 논리다. 손 연구원은 “확실한 위험을 회피하기 위해 모호한 차선책을 선택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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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대선에서와 마찬가지로 17대 대선도 유권자의 선택을 최선이 아닌 차악으로 유도하는 ‘적대적 프레임’에 의해 치러졌다는 지적이 많다. 사진은 지난 19일 대선 투표 직후 방송사 출구조사 발표를 보고 한나라당 당직자와 지지자들이 환호하는 모습. 서울신문 포토라이브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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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대선에서와 마찬가지로 17대 대선도 유권자의 선택을 최선이 아닌 차악으로 유도하는 ‘적대적 프레임’에 의해 치러졌다는 지적이 많다. 사진은 지난 19일 대선 투표 직후 방송사 출구조사 발표를 보고 한나라당 당직자와 지지자들이 환호하는 모습. 서울신문 포토라이브러리
●‘경제´는 李당선자의 구호이자 굴레
적대적 프레임은 정책·비전 중심의 선거를 방해한다. 가장 큰 후과라는 데 이견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사실상 BBK 대혈투로 치러진 이번 대선이 이를 극명하게 보여 준다. 한나라당만 해도 초창기 제기했던 7·4·7 경제정책이나 대운하 프로젝트를 손놓아 버렸다. 대통합민주신당은 처음 양극화 문제를 제기하다 나중에는 평화론, 급기야 반부패에 거의 올인했다. 양측 모두 경제살리기라는 합의쟁점이 있었지만 적대적 프레임의 그늘에 갇혀 진보·보수적 대안을 내놓지 못했다.
시사평론가 김종배씨는 “대선이 통합적인 시각을 던져 줘야 하는데 이렇게 되면 국민들에게 단선적인 가치를 강요하게 된다.”고 우려했다. 단순한 선악 싸움으로 정리되면 승자와 패자 모두 오히려 자신이 내건 구호가 굴레가 되는 악순환이 발생한다. 이명박 당선자가 내건 ‘반 노무현’ 구도는 무능과 민생파탄을 막는 것에 가치를 두기 때문에 경제 회생이 되지 않을 경우 부메랑으로 돌아온다는 것이다.
정치컨설팅업체 폴컴의 이경헌 이사는 “정권심판론과 최악의 후보를 피하자는 싸움은 차기 정부의 정책과 노선을 간과하게 만든다.”면서 “이 당선자가 어떤 국정시책을 내놓더라도 제대로 된 검증없이 치러졌기 때문에 국민이 일관된 지지를 보낼지 미지수”라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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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물갈이보다 정책 기조가 중요
더 이상 적대적 프레임으로 대선이 치러져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 높아지고 있다. 정당 구조가 안정화돼야 한다는 것이 선결조건으로 제시된다.
한 정치평론가는 “미국의 경우 공화·민주당 양당 구조에서 유권자는 지지 정당에 대한 충성도가 매우 높다.”면서 “각 당은 안정된 상태에서 정책적 일관성을 갖고 이슈를 제기하며 유권자에게 통합적인 판단을 요구한다.”고 말했다. 우리나라는 정당이 급조되는 등 뿌리가 없는 상황이 반복되기 때문에 바람직한 대선구도가 성립되기 어렵다는 충고로 들린다.
인물 물갈이가 아닌 비전과 세력혁신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는 대안도 제시된다.
김호기 연세대 교수는 “대립하는 정치세력이 적어도 합의하는 쟁점에 대해서는 비전 중심으로 싸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선 이후 정국의 쟁점이 되고 있는 세계화와 신자유주의에 대한 대응책의 경우, 김 교수는 “한나라당은 이미 경쟁력 중심으로 방향을 잡았는데 진보개혁 진영은 아직 기조를 세우지 못했다.”며 비전 중심의 세력 혁신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구혜영 박창규기자 koohy@seoul.co.kr
2007-12-25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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