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다들 신나게 놀아보자!” 꿈도 사랑도 다 잡은 뚱보 소녀 트레이시의 이 한마디에 여기저기서 관객들이 튀어 올랐다.2시간30분간의 흥겨운 시간여행이 끝나자 무대 위 아래는 하나가 됐다. 공연 내내 웃음, 박수, 환호성이 끊이지 않고 크게, 오래도록 울렸다.16일 정식 개막한 국내 초연 뮤지컬 ‘헤어스프레이’의 앞날을 짐작하기란 어렵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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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스프레이’는 뚱뚱하고 못생긴 백인 소녀가 강력한 긍정의 힘으로 TV 스타로 올라선다는 자아실현기가 중심 이야기다. 흑백갈등이 정점을 이룬 1962년 미국 볼티모어를 배경으로, 인종차별 문제 등 40년 전 미국의 어두운 현실을 달콤하게 녹였다.1988년 미국에서 영화로 처음 만들어졌으며,2002년 뮤지컬로, 최근에 다시 영화(새달 6일 국내 개봉)로 리메이크되는 등 20년간 끈질긴 생명력을 과시하고 있다. 트레이시의 동화 같은 사랑과 성공이 시공을 초월해 흡입력을 발휘하고 있는 셈. 그 매력 속으로 들어가보자.
●60년대로…눈과 귀가 즐거워
고등학생인 트레이시의 가방에 교과서는 없어도 헤어스프레이는 있다. 공룡 발바닥 만큼 부풀린 머리가 행여 주저 앉을 새라 열심히 헤어스프레이를 뿌려댄다. 화려한 색감의 알록달록한 의상과 케이크처럼 쌓아올린 과장된 머리는 춤의 향연 만큼 볼거리다. 경제적 풍요를 맞은 미국의 60년대를 보여주기 위해 사용된 의상은 600개, 가발은 60개가 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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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의 관건은 음악. 이 점에서 ‘헤어스프레이’는 일단 합격점을 받을 만하다.“새로운 기회가 열리네.”라고 트레이시가 노래하는 첫 곡 ‘굿모닝 볼티모어’에서부터 ‘엄마, 이제 나도 다 컸어’‘종소리 들려’‘우린 운명이야’, 마지막곡 ‘멈출 수 없어’까지 흥겹게 이어지는 뮤지컬 넘버들은 낯설지만 이내 귀를 파고 든다.
●돋보인 무대… 연주는 어디서 하지?
충무아트홀 대극장은 오케스트라 핏(연주자 좌석)이 없다. 그럼 어디 있을까. 무대 뒤편을 자세히 보시라. 전면이 유리로 된 계단식 오케스트라 박스가 서있다. 연주자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보통의 공연과 달리 박칼린 음악 감독을 비롯한 연주단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브로드웨이에서 뮤지컬 ‘아이다’급이었던 이 작품은 국내에서 중규모로 축소됐는데 세트의 압축미가 돋보였다. 객석은 또 하나의 무대. 한참 정신 팔려 있다가 무대 위로 올라가는 배우를 보고 놀라지 마시라.
●못생기고 뚱뚱해… 누가?
“진짜 넓다. 앞뒤 장난 아니야.”“못생기고 뚱뚱해서 필요 없으니 쫓아낼 수밖에” 오디션을 보러 간 트레이시를 향해 쏟아지는 얄미운 말들. 하지만 무대 위의 트레이시는 어쩐지 억울해 보인다. 깡마른 체형의 배우 방진의, 뚱녀 변신을 위해 몸통과 다리 부위에 특수 제작된 라텍스 의상을 껴입었으나 역부족이다.
라텍스로 만들었지만 무게는 1㎏ 정도. 빠른 속도로 쉼없이 춤추고 노래해야 하기에 더이상 부피를 늘릴 수 없는 한계가 있다. 저절로 살이 붙기만을 기다려야 할 텐데, 워낙 고난도 무대라 오히려 살이 내릴 지경이라 고민이 크다고.
●쟤 누구니?… 눈에 띄는 조연들
무대 위에서 놀 줄 아는 배우들을 보면 흥겹다. 주·조연·앙상블 할 것 없이 모두 고른 기량을 보였다. 전통적으로 남자 배우가 맡아온 트레이시 엄마 에드나 역의 김명국은 풍부한 표정과 몸놀림으로 우람하지만 귀여운 엄마 역을 완벽하게 소화했다. 가장 호기심을 불러 일으킨 사람은 트레이시의 춤꾼 흑인 친구 스위드로 분한 오승준이다. 그는 처음으로 비중 있는 역을 맡았는데 ‘흑인필’ 가득한 춤사위로 여려차례 관객들의 탄성을 이끌어 냈다. 흑인 3인조 여성 그룹 ‘다이너마이트’로 등장한 배우들은 고음에서 시원하게 터지는 폭발적인 가창력을 선보여 큰 박수갈채를 받았다. 내년 2월17일까지 충무아트홀 대극장(02)577-1987.
박상숙기자 alex@seoul.co.kr
2007-11-17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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