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기를 다섯달 남짓밖에 남기지 않고도 거칠 것이 없던 노무현 대통령의 언행에 잠시 제동이 걸리는 듯했다. 호주에서 아태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마치고 지난 10일 귀국한 노 대통령이 변양균 청와대 정책실장과 신정아씨의 부적절한 관계를 보고받자마자 변씨를 잘랐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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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원 수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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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원 수석 논설위원
노 대통령이 격노했다는 소식에 많은 국민이 대통령의 ‘정식 사과’를 기대했을 것이다. 언론이 ‘변양균-신정아 연결고리’에 의혹을 제기하자 그는 “깜도 안 되는 의혹”에 “소설 같은 느낌이 든다.”고 원색적인 비난을 퍼부은 바 있다. 불과 열흘 어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러나 다음날 긴급 소집한 청와대 출입기자 간담회에서 노 대통령은 여전히 당당했다. 노 대통령은 변양균 건이 “난감하고 황당”하다면서도 국민에게 입장을 표명하는 일은 검찰 수사 결과가 확정된 뒤로 미루었다. 정윤재 건에 대해서도 “아주 부적절한 행위”였지만 “검찰 수사 결과 불법행위가 있으면 ‘측근 비리’라고 이름 붙여도 변명하지 않겠다.”라고 했다.
‘부적절한 행위’이지만 수사가 끝나지 않았으니 아직 불법은 아니라는 것, 그러므로 당장 사과할 이유는 없다는 뜻이다. 게다가 나중에는 ‘측근 비리’라 불러도 된다고 허락했으니, 언론으로서는 뒷날 시빗거리가 될 뻔한 큰 짐을 하나 던 셈이다. 노 대통령은 이어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 손학규 대통합신당 경선주자 등을 비판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대한민국 역대 대통령을 보면 뒤끝이 늘 좋지 않았다. 노태우·김영삼·김대중 대통령 모두가 극심한 레임덕을 겪었다. 반면 노무현 대통령에게는 외형상 아직 레임덕이 없다.
제1야당 후보를 명예훼손 혐의로 형사고소하고, 범여권 주자들에게 대통령 자격이 없다고 직설적으로 비난하며, 헌법과 선거법에 공공연히 불만을 터뜨리는, 그리고 언론에 선전포고를 하고 무차별 공격하는 무서운 대통령에게 어찌 레임덕의 그림자라도 어른거리겠는가.
문제는 레임덕이 없다는 말이 나라가 정상적으로 돌아간다는 뜻이 아니라는 데 있다. 노 대통령이 레임덕을 거부한 채 전방위로 정치 전면에 나서는 바람에 정작 “난감하고 황당”한 사람들은 국민이다.
대선은 코 앞에 있는데, 노 대통령은 어차피 후보로 나서지도 못할 텐데, 그런데도 그는 여전히 이명박 후보의 상대역을 자처한다. 그 탓에 범여권 대선주자라는 이들의 존재감은 희미하기만 하다. 혹시 노 대통령의 속셈은, 자신이 지목하는 후계자가 대선에 나가지 못할 바에야 한나라당에 져도 상관없다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이다.
임기가 정해져 있고 연임이 제한된, 정상적인 대통령중심제 아래서 레임덕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그것은 마치 새 생명을 싹 틔울 봄을 맞이하고자 대지가 한겨울 휴식을 취하는 것과 같다. 따라서 정치학자들은 레임덕을 피하려 들지 말고 잘 관리하라고 충고한다.
요즘 노 대통령의 행태를 지켜보노라면 아무나 쪼으려고 덤벼드는 싸움닭이나, 시도 때도 없이 꽥꽥거리고 따라다니는 거위보다는 차라리 길을 잃고 뒤뚱거리는 오리, 곧 레임덕이 낫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그나마 갈등과 혼란을 덜 부추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노무현 대통령께 간곡히 부탁드린다. 대통령님, 이제는 제발 국민을 편하게 놓아두시지요.
수석논설위원 ywyi@seoul.co.kr
2007-09-13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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