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천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석좌교수
지난 몇 년 간 미국에 있는 내 동료들 중 상당수가 현대 자동차를 구입했다. 옛날에는 현대 자동차가 싼 맛에 사는 차였지만 이제는 다르다. 내 친구들은 한결같이 현대 자동차의 우수한 성능을 칭송하기 바쁘다.20여 년 전 일본의 이미지가 새로운 차원으로 올라서던 것과 마찬가지로 대한민국의 이미지가 새로워지고 있다. 이미지가 좋아지니 홀연 애니콜이 더 잘 들리고,LG 모니터가 더 깨끗하게 보이고, 싼타페가 더 잘 굴러가는 것 같이 느끼는 것이다. 우리는 바야흐로 이미지의 시대에 살고 있다.
외국에서는 승승장구했는지 모르지만 국내에서는 연례행사처럼 벌어지는 노사분규 때문에 현대자동차는 그동안 참으로 어려운 걸음걸이를 해왔다. 그러던 현대자동차가 노조와 사측 간의 무분규 타협을 이끌어냈다. 무려 10년 만에 얻어낸 개가다. 대타협을 이끌어낸 당사자들도 믿어지지 않는다지만 그동안 안타깝게 그들을 지켜보던 국민들도 믿기 어려워하기는 마찬가지다. 하지만 자연을 연구하는 내게는 전혀 새로운 일이 아니다.
사람들은 흔히 자연을 약육강식의 처절한 생존경쟁의 장으로만 생각한다. 불과 20여 년 전에는 자연을 연구하는 생태학자들의 생각도 그리 다르지 않았다. 자원이 한정되어 있는 상황에서 경쟁은 불가피해 보인다. 하지만 눈 앞에 나타나는 적마다 모두 제거하는 것이 경쟁에서 이기는 유일한 방법이 아니라는 걸 생태학자들도 뒤늦게나마 깨달았다.
이세상에서 수적으로 가장 성공한 동물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뭐라고 답하겠는가? 말할 나위도 없이 곤충이다. 이 세상의 거의 절반이 곤충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세상에서 무게로 볼 때 가장 성공한 생물집단은 누구인가? 고래? 코끼리? 고래나 코끼리는 개체의 무게가 엄청난 것일 뿐 그 수가 그리 큰 동물들은 아니다. 전체 무게로 볼 때 이 세상에서 가장 성공한 생물집단은 식물이다. 그 중에서도 꽃을 피우는 식물, 즉 현화식물이다. 이 세상의 모든 동물들을 모두 저울에 올려 놓는다 하더라도 현화식물 전체의 무게와 비교하면 그야말로 새 발의 피다.
그렇다면 곤충과 현화식물은 어떻게 이 같은 성공을 이끌어냈을까? 서로 상대를 제거하기 위해 무한경쟁을 해온 것인가? 그와는 정반대로 곤충과 현화식물은 꽃가루받이를 통해 서로 돕고 살아왔다. 이제 우리 생태학자들은 안다. 자연계에 살아남은 모든 생물들은 제가끔 공생 동료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공생 동료 없이 홀로 좌충우돌 무작정 경쟁만 일삼는 생물은 여기저기 공생관계를 맺고 사는 생물의 경쟁 상대가 되지 못한다. 내가 눈 앞의 상대와 막무가내로 경쟁하는 동안 나의 진정한 경쟁상대는 주변과 손을 잡고 달린다.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남과 손을 잡아야 한다.
자연생태계에는 독불장군이란 없다. 산업생태계도 마찬가지다. 굳게 잡은 현대자동차 노사의 손을 불안한 눈초리로 지켜보고 있는 이들이 있다. 바로 외국의 자동차 회사들이다. 현대자동차의 진정한 경쟁상대들 말이다. 공멸이 아닌 공생의 길을 택한 현대자동차의 앞날에 밝은 희망이 보인다.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석좌교수
2007-09-07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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