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결혼 20년 동안 남편은 신혼 초 잠시 직장에 다녔을 뿐 그후 고시공부와 대학원을 다니면서 자기 생활에만 충실했습니다. 경제적으로 힘들었던 저는 아이를 친정에 맡기고 무엇이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었지만 남편에게 버림받을까봐 더 많이 다가가려 했습니다. 지금은 그럭저럭 먹고사는 데는 지장이 없는데 남편이 돈을 요구해올 때마다 자식들 때문에 참고 살아온 세월이 억울해서 미칠 것 같습니다. 남편이 신혼 때 처자식 버리고, 집 보증금을 몰래 빼서 혼자 학교 근처에 방 얻어 살았던 기억이 되살아날 때면 아이들에게마저 분노하게 됩니다. 남편에게 길들여져 20년 동안 이 남자의 노예로 살아왔다는 사실이 죽도록 저를 힘들게 합니다. 이제라도 이혼하고 다른 남자를 만나야 할까요.

-김예숙(가명·45세)

A인생에 정답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남편만 아니었다면 내가 이렇게 살진 않았을 텐데….’ 생각할수록 그동안 살아온 삶이 분하고 억울해 지금의 생활을 깨버리고 싶은 심정이 들 테지요. 자식 때문에 남편과의 원치 않는 삶을 참고 살아왔다고 생각하면 아이들마저도 원망스러울 것이고요. 그러나 내 삶에 영향을 준 것은 맞지만 남편 때문에, 자식 때문에 오늘의 내가 이러한 모습으로 있는 것이 아니며 모든 책임을 상대방에게 전가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그 아무도 노예처럼 살라고 강요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스스로 그렇게 살지 않으면 안 된다고 느꼈고 그래서 더 열심히 살았을 뿐입니다. 그 대가로 남편에게 의존하지 않고 경제능력, 생활능력 등 많은 걸 이루어냈고 얻었을 것입니다.

그동안 쌓아온 것을 다 부정하거나 거부할 것이 아니라 지금이라도 약간 비뚤어진 남편과의 관계를 인식한다면 바로잡으려는 의지를 갖고 새롭게 만들어 가면 됩니다. 남들은 능력 있고 좋은 남편 만나 행복하게 잘사는 것 같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다 각기 다양한 갈등을 겪고 삽니다. 누구든 완벽한 사람 없듯이 문제 없는 부부는 없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고생해서 쌓아온 것들을 지켜 나가면서 그동안 억울하게 생각했던 부분 즉 남편의 부당한 요구나 관계에 대해서는 새로운 설정을 하고 대응하면 됩니다.

우선 남편과 함께 과거 결혼생활에서의 상처, 응어리진 감정을 드러내놓는 시간을 갖도록 하세요. 일주일에 2회, 하루에 2시간 정도를 정해 놓은 후 “이 시간은 무조건 내 이야기를 들어 달라.”고 당부하세요. 이때 가급적 내 마음을 표현하는 것에 중점을 두어야 하며 상대방을 비난하거나 공격하는 표현은 자제하도록 하세요. 만약, 남편에게 미리 “다소 비난이나 공격으로 들릴지라도 그럴 의사가 없으니 참고 들어 달라.”는 양해를 구할 수 있다면 훨씬 좋습니다. 남편이 중간에 정 들어주기 어려울 정도로 감정이 격해질 때에는 “타임아웃!”을 외치도록 하고 이때에는 무조건 하던 이야기를 중단하겠다고 약속한 뒤 약속은 꼭 지키도록 하세요.2회 정도 잘 진행이 되면 그 다음 회는 반대로 남편이 자기 상처에 대해서 말하고 아내는 들어주도록 하세요. 이렇게 역할을 바꿔서 과거 결혼생활에서 받았던 응어리진 감정과 마음 깊이 뿌리내리고 있는 상처를 나누다 보면 조금씩 가벼워지는 것을 느끼게 되며 지금의 문제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통찰할 수 있는 힘과 자신감이 생깁니다.

또 과거 상처받았던 감정에서 놓여나게 되면 당당한 아내로서 현실적인 문제에 대한 방법을 함께 논의할 수 있지요. 더 이상 남편의 부당한 요구를 무조건 들어주거나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희생을 강요받아 산다는 나약한 생각은 하지 마세요. 인생은 정답 없는 한 권의 문제집과 같습니다. 평생토록 자기에게 주어진 이 한 권의 문제집을 풀다 가는 인생인 것이지요. 제시해 놓은 모범답안이 있다고는 하지만 각자 풀어가는 방정식과 해법이 다르게 역동하므로 모범답안대로 살아갈 수도 없습니다. 나에게 던져진 내 문제는 온전히 내 몫인 셈이며 내가 선택한 삶이 ‘모범답안’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가면 되는 것입니다.

<나우미가족문화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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