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을 소재로 한 영화 ‘화려한 휴가’가 말 그대로 화려하게 출발했다. 개봉 일주일 만인 어제 전국 관객 200만명을 돌파했다. 보통은 첫 주말이 지나면 관객 수가 줄기 마련인데,‘화려한 휴가’는 지난 월·화요일에도 23만∼24만명이 들어 오히려 늘어나는 추세라고 한다. 배급사는 최종 관객 수를 600만명 정도로 ‘겸손하게’ 예상했지만, 내심으로는 ‘괴물’‘왕의 남자’에 맞먹는 초대형 대박을 기대하는 눈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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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원 수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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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원 수석 논설위원
이 영화가 이처럼 초반 흥행몰이에 성공한 요인의 하나는 학생들의 단체관람이 많기 때문이라고 한다. 온라인학원 스타강사가 영화관을 빌려 고3 수험생 400여명에게 관람시켰는가 하면 강남의 C·L학원, 중계동의 H학원 등 유명학원들이 ‘살아 있는 역사교육’ 또는 ‘논술 대비’를 목적으로 단체관람을 문의해 온다는 것. 이 영화 관람평을 방학숙제로 내준 중·고교 교사 또한 적지 않았던 모양이다.
‘화려한 휴가’가 이처럼 관심을 끄는 건 5·18을 위해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다. 사실 5·18을 직접 다루는 영화를 제작한다고 발표했을 때 달갑지가 않았다.5·18을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게 아닌가라는 반감이 들었고, 대선이 있는 해에 개봉한다는 점 또한 정치적 의도가 숨은 듯해 은근히 불쾌했다.
어쨌건 영화는 완성됐고 각계 인사를 초청한 시사회가 잇따라 열렸다. 이즈음 김수환 추기경의 한마디가 심금을 울렸다. 김 추기경은 시사회에 초청한 배급사에 “나는 가슴이 아파 그 영화를 볼 수가 없어. 자네들은 정말 그 사건을 몰라.”라고 거절했다는 것이다. 그 말씀을 나는 이해할 수 있었다. 나 역시 그 영화를 두 눈 제대로 뜨고 두 시간 내내 바라볼 자신이 없었다.
게다가 시사회가 끝난 뒤에는 작품 완성도에 아쉬움이 있다는 평가가 여러 곳에서 나왔다. 정치적으로 이용되리라는 우려도 상당부분 입증됐다. 범여권 대선주자라는 이들이 이벤트를 벌이듯 앞다퉈 이 영화를 보았고, 관람 소감을 빙자해 경쟁자를 폄훼하는 발언이 나왔다. 심지어는 관객이 600만명을 넘어서면 대선 결과에 영향을 주리라는 분석까지 등장했다.
이래저래 안 봐도 되는 핑계가 여럿 생겼다며 안도했다. 그러다가 결국 영화관에 간 까닭은,‘화려한 휴가’가 점차 사회현상으로 떠오르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기자로선 보아 두는 게 의무이다.
영화평은 이미 넘쳐나기에 새삼 중언부언할 생각은 없다. 다만 영화를 보고 내린 결론을 밝히고자 한다.
1980년 5월 광주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잘 모르는 젊은 세대라면 이 영화를 꼭 보아야 한다. 단언하건대,5·18과 관련해 여태껏 나온 책·필름 등 온갖 텍스트 가운데 ‘화려한 휴가’만큼 쉽게 정리 잘한 ‘교과서’는 일찍이 없었다.
젊은 세대는 알아야 한다,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민주가 거저 얻어진 게 아니라는 사실을.‘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라는 나무’라는 말처럼 우리가 민주사회를 이뤄온 과정에는 처절한 희생이 겹겹이 쌓여 있다. 그리고 그 정점에 ‘5·18 광주’가 우뚝한 것이다.
불과 27년전, 아버지·어머니 세대가 겪은 ‘광주의 기억’을 젊은 세대는 마땅히 이어가야 한다. 다시금 강조한다. 숙제가 아니라도, 논술대비가 아니라도, 정치권이 뭐라 하든 상관없이 이 사회 젊은 세대는 영화 ‘화려한 휴가’를 보아야 한다. 그것은 의무이다.
수석논설위원 ywyi@seoul.co.kr
2007-08-02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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