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께 그 말을 들은 후 나는 물러나와 예를 배웠다. 아버지로부터 들은 것은 이처럼 시와 예, 두가지뿐이다.”
이 말을 들은 진항은 기뻐하며 물러나와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하나를 물어서 셋을 알았다. 시(詩)와 예(禮)를 알았고, 또 군자는 자기 아들이라 해서 특별히 가까이하지 않음을 알았다.”
이미지 확대
닫기이미지 확대 보기
진항의 말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공자가 수많은 가르침을 펼쳤으나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 본(本)은 오직 시(詩)와 예(禮)로 압축될 수 있다는 진리였으며, 또한 공자가 자기 아들이라 해서 특별하게 사사로운 가르침을 펼치지 않았다는 사실인 것이다.
이는 공리가 안연을 비롯한 다른 제자와는 달리 뛰어난 학문적 재능을 갖고 있지 않았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지만 어쨌든 공자는 아들 공리가 죽자 직접 자신이 지금도 남아 있는 묏자리에 장례를 치러주었으며, 바로 그 옆 자리에 자신이 묻힐 묘터를 마련해둘 만큼 큰 충격을 받았던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안연이 죽자 안연의 아버지 안로(顔路)가 공자에게 공자의 수레를 팔아 덧관(최고급관)을 마련해 줄 것을 요청하였을 때 공자가 대답하였던 내용에서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잘났건 못났건 누구나 자기 자식을 위해서 말하기 마련이다.(才不才亦各言其子也)”
물론 공자는 공리가 죽었을 때 평범한 관을 사용하였을 뿐 덧관을 마련하지 못하였으므로 비록 수제자인 안연이 죽었다 하더라도 수레를 팔아서까지 덧관을 마련할 수 없다고 완강하게 거절하고 있는 장면이 논어의 선진(先進)편에 나오고 있지만 공자가 말한 ‘잘났건 못났건 누구나 자기 자식을 위한다.’는 내용은 역설적으로 표현하면 공자의 아들 공리 역시 비록 못난 자식이라 하더라도 아버지인 자신은 아들을 위할 수밖에 없다는 공자의 인간적인 면모를 드러내고 있는 장면인 것이다. 그러나 진항의 표현대로 ‘자기 아들이라 해서 특별히 가까이하지 않았던’ 평범한 아들 공리와는 달리 손자 공급은 할아버지를 뛰어넘을 만큼 빼어난 학자였다.
따라서 공리는 죽기 직전 ‘나는 아버지(공자)보다는 못하지만 내 아들은 아버지(공리)보다 훨씬 낫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는 일화가 전해지고 있지만 이는 후세의 가필임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공리는 공자의 나이 69세 때 50세의 나이로 죽었으며, 공급은 바로 공리가 죽던 해에 태어난 유복자이기 때문이다. 자기가 죽기 전에도 태어나지 않은 아들을 두고 자기보다 뛰어난 현인이라고 표현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공자도 아내를 쫓아내고 홀아비 생활을 하였는데, 그의 아들 공리도 이유 없이 아내를 쫓아 보냈으며, 손자인 공급조차도 아내를 쫓아 보냈다.
공자가 아내를 쫓아 보낸 이유는 제사상에 번육(肉)을 올리지 않았다는 이유였는데, 이러한 괴팍한 기질 역시 유전적인 요소였을까.3대가 모두 아내와 불화를 겪은 광부(曠夫)들이었던 것이다.
2006-12-21 27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