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이해인 / 그림 김점선
다시 12월입니다. 한 해를 살아온 고마움과 놀라움으로 한 장 남은 달력을 바라봅니다.
오늘을 함께 사는 모든 사람에게 자연에게 사물에게 아름답고 따뜻한 사랑의 인사를 하고 싶어지는 계절입니다.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소임을 다하며 때로는 힘겹게 살아내시느라고 정말 수고가 많으셨지요?” 하고 물으면 눈물 글썽이며 고개 끄덕이는 내 이웃들의 모습을 대하면 가슴이 찡해옵니다.
나는 ‘우리’라는 말을 참 좋아해요. 우리 동네, 우리나라, 우리 집, 우리 학교, 우리 친구, 우리 밥상, 우리 공동체…라는 말을 들으면 금방 마음이 순하고 따뜻해집니다.
사람들이 간혹 ‘우리 남편’ ‘우리 그이’‘우리 집사람’이라 표현하는 것 역시 얼마나 정겨운지요! 우리라고 하면서도 내 것임을 나타낼 수 있는 그 은근한 표현은 우리말의 특이한 매력인 듯합니다.
수녀원에 처음 와서 어떤 물건을 사용하든지 나의 것도 우리 것이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는 가르침이 무척 인상 깊고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수십 년이 지난 지금은 나라는 표현보다 우리라는 표현이 참 편하고 정신적 물질적 소유에서 자유로워지는 데도 도움을 줍니다.

올 한 해 특별히 개인적으로 감사하고 싶은 일들을 몇 가지 떠올려봅니다. 오랜 투병생활 끝에 저세상으로 떠나신 세 분의 선배 수녀님들이 남기고 간 믿음 깊고 청빈한 모습에서 눈물겹도록 아름다운 삶의 지혜를 배운 것, 지상에서의 삶이 얼마 남지 않으신 구순의 노모를 수녀원 내에 모시며 그분의 투명한 단순함과 평온함을 배우는 가운데 노년의 삶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된 것, 삶이 힘겹다며 울먹이는 친지들에게 전화, 편지, 방문 등으로 ‘작은 위로자’의 역할을 해줄 수 있었던 것. 시를 많이 짓진 못했지만 다른 시인들의 시들을 찾아 읽으며 경탄의 감각을 회복하려고 노력한 결과 새소리, 바람소리, 파도소리에도 늘 가슴이 뛰고 사람들을 만나면 설레는 미소를 띨 수 있게 된 것, 함께 사는 이들의 쓰디쓴 충고와 질책이 당장은 먹기 힘든 음식이지만 잘만 소화해내면 어떤 달콤한 칭찬보다 영적 성장에 유익한 선물이 됨을 자주 체험한 것, 새로운 인연을 통하여 삶의 다양성을 이해하고 안목을 넓힌 것, 바쁜 중에도 꾸준히 읽은 책들의 어느 글귀들이 거룩한 갈망을 일깨워준 것…. 이렇게 적기 시작하니 쓰고 싶은 것들이 점점 더 많아집니다.
이번 크리스마스에 나는 누구에게 무엇을 선물할까, 궁리하며 크리스마스까지 기다리지 말고 바로 지금 여기서 감사를 발견하며 기쁘게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자신을 사랑하는 가족 친지에게 전하는 가장 좋은 크리스마스 선물이 아닌가 싶습니다.
내가 해야 할 일들을 미루지 않는 지혜, 해야 할 용서를 미루지 않는 용기를 날마다 새롭게 지닐 수 있도록 함께 기도해요,
우리. 함께 사랑해요, 우리.
‘언제 한번이라는 시간은 존재하지 않습니다’라는 윤제림 시인의 글을 다시 읽어보며 오늘 하루를 그리고 한 해를 마무리할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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