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좋아한다는 건 참 쉽지 않고 만만찮은 일임에 틀림이 없다. 그것도 나이가 훌쩍 들어버린 뒤에는 마음을 드러내거나 받아들인다는 것이 더 힘들고 고된 일이 되어 버린다. 아마도 나이를 먹어가면서 더 이상 상처를 받기 싫거나 상처를 주기 싫다는 일종의‘감정의 보호 상태’가 되기 때문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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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보호막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강력한 포스로 작용해서 좀처럼 쉽게 그 문을 열지 못하게 되는 법이다. 그럼에도 영원한 사랑을 갈구하고 응원하는 마음 속 목소리는 더욱 강렬해지는 법이라서 간절함 만큼이나 더 외로워지는 것은 아닐런지….
도쿄, 밀라노, 피렌체 그리고 아름다운 첼로의 선율 속에 10년간의 사랑이야기가 펼쳐지는,‘냉정과 열정사이’(Between Calm and Passion·2001년)는 잊혀지지 않는 그 어리석은 기다림의 끝을 보여준다. 물론, 엔딩은 해피하지만 그 길고 지난한 과정이 현실 속 사랑이라면 얼마나 간절하게 원하며 기다릴 수 있을까. 그래서 영화의 시작이나 끝에 ‘이 영화는 실화를 기초로 하였습니다.’라는 자막이 더 짜릿하게 전율을 배가시키는지도 모르겠다.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미술복원 공부를 하고 있는 준세이는 진심으로 사랑했지만 어떤 사건을 계기로 이별하게 된 아오이를 잊지 못하고 있다. 아오이 또한 다른 사랑의 품에 안겨 있지만 늘 준세이를 떠올리며 가슴 아파한다. 총명하고 아름다운 청년, 준세이. 그러나 그는 아오이가 남긴 말을 기억하며 그리움의 고리를 놓지 않는다. 바로, 준세이의 서른 번째 생일날 함께 피렌체 두오모에 오르고 싶다던 그녀의 말을 말이다. 이렇듯 사소한 말 한마디는 기다림의 고리를 제공하고 그 고리를 부여잡은 채 긴 세월을 거뜬히 버티게 하는 이유가 된다.
‘사랑, 지우시겠습니까? 다시 시작하시겠습니까?’라는 질문으로 시작하는 ‘이터널 선샤인’(Eternal Sunshine·2004년). 때론 사랑보다 사랑했던 기억 때문에 힘겨운 때가 있다. 이 영화는 바로 그런 상처와 아픔 등의 특정한 기억만을 지울 수 있다는 설정을 바탕으로, 사랑을 경험해 본 우리네의 그것과 그리 멀지 않은 상상력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이야기가 진행되는 동안 왜 서로에게 끌리는지, 왜 사랑에 빠지는지, 왜 시간이 지나면 서로에게 소원해지는지에 대해 웃음과 눈물 속에 되새김질하게 한다.
사랑의 말랑말랑함만을 그려왔던 다른 영화와 변별성을 두며‘진짜 사랑이야기’라 할 만한 지점은 여기에서 출발한다.
나이가 들어가고 시간이 흐르면서 영원한 사랑에 대한 애절함이 짙어간다고는 했지만, 현실 속 자신의 옆에서 코를 골며 자거나 배둘레햄 마을의 족장쯤으로 변해버린 사람을 여전히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영원함이라는 것은 낯설고 까마득한 기억 속에 존재하는 것만은 아니다. 부여잡고 사는 바로 내 옆자리의 사람에게서 구하거나 만들어 나가는 것.
명심해야 할 것은, 영원한 사랑을 원하고 갈구하는 것보다 현재의 사랑을 충실히 지키는 것이 그 영원함에 한걸음 더 다가가는 것이란 걸 잊지 않길 바란다. 그러니 어금니 즈려물고 버티면 영원함이 상으로 주어진다. 그것이 최선이라고 믿는 사람들에게는 말이다.
시나리오 작가
2006-09-21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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