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방금 선생으로부터 열정의 물을 떠오라는 분부를 받고 물동이를 들고 서당 앞뜰로 나온 길이었다.
도산서당은 세 칸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중 중간의 한 칸인 완락재(玩樂齋)에 퇴계는 거처하고 있었다. 완락재 앞에는 여느 집의 대청마루와 같은 기능을 가진 암서헌(巖栖軒)이란 넓은 마루방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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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락재’란 이름은 퇴계가 주자의 ‘명당실기’에 나오는 ‘생명이 다하도록 즐기며 감상하여도 싫증이 나지 않을 만하다.’는 문장에서 취한 것이고, 몸소 제자를 가리키던 암서헌이란 마루방의 당호도 주자의 ‘학문에 대한 자신을 오래도록 갖지 못하였더니 바위에 깃들어 살자 조그만 효험이라도 얻을 수 있었다.’라는 글에서 인용하여 온 것이었다.
퇴계는 언제나 완락재에 기거하며 학문을 연구하였고 암서헌에서는 제자들에게 학문을 가르쳤던 것이다.
지금은 휴식시간, 서당에 머물고 있는 제자들은 각자 자신의 숙소에 유하면서 바깥나들이를 삼가고 공부에 전념하고 있을 시간이었던 것이다.
완락재.
주자의 말처럼 ‘생명이 다하도록 즐기며 감상하여도 싫증이 나지 않는 곳’, 주자철학의 성실한 계승자이자 주자철학의 가장 소중한 해석가였던 퇴계. 공자로부터 시작된 유가의 숲이 맹자와 주자를 거쳐 마침내 해동의 이퇴계에 의해서 성리학적 이치가 완성된 바로 그곳 완락재.
이 완락재에 대해서 퇴계는 다음과 같이 노래하고 있다.
“공경을 주로 함은 의리를 길러 모으는 공력이 있네.
잃지도 억지도 기르지도 않는 이치를 차츰 통달하여 나가서
주렴계의 태극의 묘리를 깨우쳐 이르게 되니,
천년 이어내린 즐거움이 이와 같았음을 알겠노라.”
퇴계의 시속에 나오는 ‘천년 이어 내린 즐거움’, 즉 천년 이어 내려온 유학의 정신을 바로 완락재에서 되새겨 퇴계는 바로 이곳에서 ‘태극의 묘리’를 깨우쳐 이룰 수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