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스승 퇴계가 또다시 칭병을 하며 물러나려 하자 율곡은 다시 다음과 같이 간곡히 청원한다.
“만일 스승님께서 경연의 자리에 계신다면 나라의 이익됨이 매우 클 것입니다. 벼슬을 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남을 위한 것이지 어찌 꼭 자신만을 위한 것이겠습니까.”
그러자 퇴계는 다시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벼슬을 하는 것이 진실로 남을 위한 것이기는 하지만 그 이익됨이 남에게 미치지 못하고 자신의 몸 걱정만 더해진다면 어쩔 수 없는 것이오.”
스승의 이 말을 들은 율곡은 다시 말을 덧붙인다.
“스승님께서 조정에 계시면서 설령 하는 바가 없으시더라도 왕이 무겁게 의지하고 인정도 기뻐함이 있다면 이 역시 이익됨이 남에게 미치는 것입니다. 스승님의 학문이 어찌 위아지학(爲我之學)이겠습니까.”
위아지학.
일찍이 맹자가 선포하였던 양주(楊朱)의 자신만을 위한 위아주의를 뜻하는 말.
맹자는 ‘양주는 자신만을 위하는 학문이니 임금이 없고, 묵적의 겸애는 아버지가 없음이니 아버지가 없고, 임금이 없는 것은 새나 짐승과 다름이 없는 것이다.(楊氏爲我 是無君 墨氏兼愛 是無父 無父無君 是禽獸也)’라고 위아주의를 비난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 말은 그 무렵 많은 사람들이 퇴계를 헐뜯는 구절로 인용되고 있었던 것이다.
당대의 원로대신이었던 이준경은 맹자의 말을 인용하여 퇴계를 ‘산새’라고 비난하였으며, 심지어는 퇴계의 제자였던 남시보(南時甫)까지도 스승 퇴계를 위아주의자라고 비난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한 비난을 모르고 있을 퇴계가 아니었다. 그러나 율곡의 간곡한 청원에도 퇴계는 묵묵부답으로 침묵을 지켰을 뿐 아무런 대답도 변명도 하지 않았다.
훗날 퇴계는 기대승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러한 자신을 향한 비난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변명하고 있다.
이 문장은 퇴계가 유일하게 자신에 대한 변명을 하는 단 하나의 장면인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요새 들으니 남시보가 나를 일러 위아(爲我)의 학문을 한다고 하는데, 대저 나는 위아의 학문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형적(形跡)은 위아와 흡사하다고 할 수 있으니, 그런 말을 듣고 보니 실로 부끄러운 일이다.”
퇴계는 자신의 학문이 ‘위아주의’가 아닌 ‘위기주의(爲己主義)’임을 명백히 밝히고 있다.
원래 ‘위기지학’은 성리학에서 군자학으로까지 불리는 것으로 ‘자기의 인격, 학식, 덕행의 향상과 증식을 목적으로 하는 학문’인 것이다. 퇴계는 자신의 ‘위기지학’이 제자 남시보가 주장하였던 양주의 ‘위아지학’은 아니라 하더라도 그 형적에 있어 위아와 흡사하니, 실로 부끄러운 일이라고 변명하고 있지만 어디까지나 자신의 학문은 우리 인간으로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로서의 지, 덕, 행을 실천궁행하는 ‘위기지학’으로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에 비하면 율곡은 ‘위인지학(爲人之學)’이었다.
이러한 사실은 두 사람이 나눈 최후의 대화에서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2006-05-26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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