儒林(567)-제5부 格物致知 제3장 天道策(3)

儒林(567)-제5부 格物致知 제3장 天道策(3)

입력 2006-03-24 00:00
수정 2006-03-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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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부 格物致知

제3장 天道策(3)

과장은 각각 정해진 좌석이 없으므로 과장에 들어서면 우선 좋은 자리를 잡아야 했다.

좋은 자리는 현제판(懸題板)이라 불리는 시험문제를 가장 빠르게 볼 수 있는 곳. 또한 답안지를 빨리 낼 수 있는 곳이 으뜸으로 그 좋은 자리를 확보하려면 남들보다 먼저 입장하여야 하는데, 이때는 자연 치열한 몸싸움이 벌어지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과거장에 입장하는 부문(赴門)에는 각 유생들이 고용한 선접꾼들이 자리잡고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고 서 있기 마련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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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로 한양에 사는 세도가의 자제들인 유생과는 달리 율곡은 변방에 사는 서생이었고, 또한 선접꾼들을 고용할 만한 여력도 없었으므로 혼자서 부문 앞에 서서 과장이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이들이 합세하여 율곡을 에워싼 것이었다.

“네 놈은 일찍이 사도에 빠져 석씨를 숭상하던 잡놈이 아니더냐. 그러한 네가 어찌하여 성인들의 신위가 모셔진 문묘에 함부로 드나들 수 있단 말이냐.”

유생의 말은 사실이었다.

원래 성균관의 대성전(大成殿)은 조선의 태조 이성계가 처음으로 세운 건물이었다.

그 후 불에 탄 것을 태종7년(1407년)에 다시 세워 공자를 비롯하여 증자, 맹자, 안자, 자사 등 4대 성인과 공자의 뛰어난 제자들인 10철의 신위를 모신 거룩한 사당이었던 것이다.‘대성전’이라는 당호도 중국 곡부(曲阜)에 남아있는 공자의 묘당에서 그대로 따온 것으로 유교를 국교로 삼고 있던 조선에서는 함부로 드나들 수 없는 신성한 성전이었던 것이다.

율곡은 이미 2년 전에 한성시에서 그러한 수모를 당하였으므로 크게 놀라지는 않았으나 이번에는 선접꾼까지 합세한 행패였으므로 나아갈 수도 물러갈 수도 없는 사면초가의 형국이었다.

물론 부문 앞에는 수협관(搜挾官)이 눈을 부라리며 서 있었다.

과장에서는 수협관의 힘이 가장 막강하여 과거를 보는 거자(擧子)들에게는 ‘저승사자’라고 불리던 관리들이었다. 이들은 거자들이 시험장 안에 종이와 붓, 먹, 벼루 이외에는 그 어떤 물건도 갖고 들어가지 못하도록 감시하였다. 만약 책 따위를 숨기고 들어가다 들키는 경우에는 몇 년씩 응시자격을 박탈하는 조치를 내렸던 것이다.

또한 수협관은 응시생의 몸수색을 철저히 할 뿐 아니라 과거시험장 안에 응시생과 종사자 이외에는 그 누구도 들어가지 못하도록 하였다.

양반의 자제들은 선접꾼 이외에도 평소에 수종을 드는 하인을 데리고 다녔는데, 특히 이번 별시는 성균관의 유생들만 치르는 특별시였으므로 선접꾼은 물론 하인들의 입장이 허락되지 않았던 것이다.

천하의 왈패들인 선접꾼들도 수협관을 두려워하였는데, 왜냐하면 자칫 눈 밖에 났다가는 누구든 즉시 체포되어 수군(水軍)으로 보내어질 위험성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한 막강한 권한을 가진 수협관이었지만 그는 부문을 지키고 있었을 뿐 세도가의 자제들인 유생들의 말다툼을 말리거나 참견하여 비위를 건드릴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짐짓 못 본 체 한눈을 팔고 있었던 것이다.

그 순간 율곡을 막아 세운 유생이 큰소리로 꾸짖어 말하였다.

“네놈이 정히 성균관 안으로 들어가려면 내 가랑이 사이를 개처럼 기어가거라. 그러하지 못한다면 감히 한 발자국도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2006-03-24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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