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비록 노마와 같은 둔지(鈍智)임에는 틀림이 없으나 안회처럼 사리를 깊이 탐구하여 나아갈 수는 있지 아니하겠소이까. 이치를 탐구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이니, 한 가지 방법에만 얽매일 수는 없소이다. 한 가지 일을 깊이 탐구하다가 되지 않으면 곧바로 싫증을 내어 다시는 사리를 깊이 탐구하는 것을 실천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실로 미적미적 허송세월을 보내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오. 그러나 이렇게 탐구하고 또 탐구하여 나가면 쌓이고 깊이 익숙해져서 자연 마음이 밝아지고 명덕의 실체가 눈앞에 확연히 나타나게 될 것이 아니겠소.”
퇴계의 대답은 실로 명언이다.
율곡은 결벽증을 가진 완벽주의자처럼 보인다.
그가 던진 질문은 주자가 대학에서 말하였던 대로 ‘마음이 편안해진 이후라야 능히 사려할 수 있음(安而後能慮)’인데, 이를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은 유일하게 공자의 수제자였던 안회. 그렇다면 안회처럼 모든 마음의 근심과 번뇌와 집착을 끊어버린 사람만이 ‘인간의 밝은 덕(明德)’을 밝힐 자격이 있다면 ‘쓸데없이 한 곳에 매어달린 조롱박’과 같은 자신이 과연 대학의 도를 밝힐 수 있겠느냐는 내용이었다.
순간 퇴계는 율곡의 질문이 과공비례(過恭非禮)임을 꿰뚫어 본 것이었다. 율곡의 질문은 일종의 허언(虛言)이었던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퇴계는 율곡이 ‘지나치게 사장(詞章)을 숭상하고 있다.’고 제자 조목(趙穆)에게 편지를 써 보낼 정도로 율곡의 수사학적 문장과 화려한 말솜씨에 대해서 경계하고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퇴계가 자신을 노마(駑馬), 즉 걸음이 느린 말로 재능이 모자라는 사람으로 표현하고 한바탕 크게 웃었던 것은 율곡에게 충격을 주기 위한 일종의 할(喝)이었던 것이다.
일찍이 율곡이 금강산에 있을 무렵 암자에 숨어살던 노승과 한바탕 선문답을 벌인 것처럼 이번에는 퇴계를 상대로 유교적 법거량을 펼쳐 보인 것을 깨닫고 퇴계는 한방망이 후려갈긴 것이었다.
퇴계의 이러한 모습은 아이로니컬하게도 중국에 있어 달마의 첫 번째 제자였던 혜가(慧可)와의 대화를 연상시킨다.
밤새 큰 눈이 내렸는데도 달마를 찾아온 신광은 자신을 제자로 받아들일 것을 간청하여 눈 속에서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 이에 달마가 ‘부처의 위없는 묘한 도는 부지런히 정진하여 행하기 어려운 일을 행하고 참기 어려운 일을 참아야 하거늘 네 어찌 작은 공덕과 작은 지혜와 교만한 마음으로 참법을 배우겠는가. 이는 헛수고만 할 뿐이다.’라고 거절하자 신광은 칼을 뽑아 왼쪽 팔을 끊는다.
순간 이 끊어진 왼쪽 팔을 달마에게 내어들자 잘린 왼쪽 팔에서 흘러나온 선혈이 무릎을 지나도록 쌓인 눈을 붉게 물들이는 것을 본 달마는 마침내 신광의 이름을 혜가라고 고쳐주고 정식 제자로 맞아들인다.
이때 혜가는 스승에게 첫마디로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
“스님 제 마음이 편안치 못합니다. 스님께서 평안하게 해주소서.”
2006-02-23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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