儒林(492)-제5부 格物致知 제1장 疾風怒濤(14)

儒林(492)-제5부 格物致知 제1장 疾風怒濤(14)

입력 2005-12-08 00:00
수정 2005-12-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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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부 格物致知

제1장 疾風怒濤(14)


명조실록에 기록된 내용처럼 율곡이 자신의 전생을 김시습으로 보고 이 세상을 가낭선(賈浪仙)으로 보았다는 것은 이 무렵 율곡의 마음 속에 미친 바람과 성난 파도와 같은 인생의 질곡(桎梏)이 얼마나 그를 구속하고 있었던가를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김시습(金時習).

생육신의 한 사람으로 수양대군이 단종을 몰아내고 왕위에 올랐다는 사실을 듣자 그 길로 삭발을 하고 방랑의 길을 떠났던 음유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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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곡은 자신의 전생을 김시습이라고 노래하면서 현실과 이상에서 방황하고 있는 자신의 심정을 드러내고 있으며, 또한 한때는 중이 되어 무본(無本)으로 불리었다가 환속하여 시인이 되었던 당나라의 시인 가도(賈島)를 견줌으로써 자신의 비참한 처지를 은유하고 있음인 것이다.

어느 날 시인 가낭선은 늙은 말을 타고 천천히 장안의 거리를 지나면서 시 짓기에 열중하고 있었다. 그는 방금 절친한 친구였던 이응(李凝)의 집을 방문하고 돌아오던 길이었다.

가낭선은 ‘이응의 그윽한 거처에 붙여(題李凝幽居)’라는 시제를 정해 놓고 다음과 같은 오언율시를 짓기 시작한다.

“한가로이 거처하니 이웃도 드물고

풀숲 오솔길은 거친 정원으로 통한다. 새는 연못가에 나무 위에서 잠들고

중은 달 아래 문을 두드린다.(閑居隣竝少 草徑入荒園 鳥宿池邊樹 僧敲月下門)”

그런데 시인 가낭선은 이 시의 마지막 구절에서 고민에 빠지기 시작하였다.

처음에 가낭선은 ‘중은 달 아래 문을 민다(僧推月下門)’라고 문장을 썼으나 갑자기 ‘중은 달 아래 문을 두드린다(僧敲月下門)’로 고치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문을 민다(推)’로 하는 것이 좋을지 아니면 ‘문을 두드린다(敲)’로 하는 것이 좋은지 판단이 서지 않았던 가낭선은 늙은 말을 타고 고개를 숙이며 다음과 같이 중얼거리기 시작하였다.

“민다로 하는 것이 나은가, 두드린다로 하는 것이 나은가, 그것 참 어려운 일이도다.”

그때였다.

갑자기 길거리에서 벽제소리가 들려 왔다.

“비켰거라, 어느 안전이라고 무례하게 길을 막느냐. 네 이놈, 물렀거라.”

문득 고개를 들어보니 고관의 행차 앞을 자신이 타고 있던 말이 길을 막고 있는 것이었다.

그 당시 고관대작이 타고 가던 행차를 마주하면 즉시 길을 비키고 타고 있던 말이나 수레에서 내려 땅에 엎드려 부복하는 것이 법도였으므로 가낭선은 불경죄를 저지른 것이었다.

더욱이 길을 가던 사람은 당송팔대가의 한사람이었던 한유(韓愈). 그는 뛰어난 유학자였을 뿐 아니라 당의 도읍 장안의 경조윤(京兆尹) 벼슬에 올라 있던 최고의 권신이었던 것이다.

당황한 가낭선이 말에서 내리자 한유는 자신을 막은 사람이 다름 아닌 시인 가도임을 전해 듣고 그를 불러 자신의 곁에 오도록 한 후 그 연유를 물었다. 그러자 가도는 시를 짓는 도중 한 문장에서 가로막혀 그것에 신경 쓰고 몰두하느라 벽제소리를 듣지 못하였다고 변명하였다.
2005-12-08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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