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부 格物致知
제1장 疾風怒濤(11)
그 무렵 율곡의 아버지 이원수에게는 첩이 있었다. 자신이 죽더라도 절대 재혼을 하지 않겠다고 언약한 이원수였으므로 대신 첩으로 살림을 맡도록 하였는데, 이 여인은 한마디로 악처였다.
양반이 아닌 양인(良人) 출신이었던 그녀는 정실부인이었던 신사임당에 대해 심한 열등의식을 갖고 있었던 듯 보인다. 신사임당이 죽자 그녀는 평소에 갖고 있던 감정을 고스란히 율곡 형제에게 쏟아 부어 단 하루도 편할 날이 없었던 것이다. 특히 율곡의 맏형인 선과 서모는 원수지간에 가까울 정도로 사이가 나빴다.
이에 대한 암시가 명종실록에 다음과 같이 짤막하게 나와 있다.
“이율곡은 어려서부터 이미 문장으로 이름이 나 있었고, 일찍 모친상을 당해 장례를 치르는데 정성이 지극하였다. 그러나 그 부친의 첩이 그를 사랑하지 않았다.…”
박세채(朴世采:1631~1695)는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당대의 유종(儒宗)으로 예학에 밝았던 학자였다. 율곡이 남긴 ‘격몽요결(擊蒙要訣)’로써 학문을 출발하였던 그는 율곡이 남긴 율곡이 세상을 떠난 110년 후 문집,‘남계집(南溪集)’에서 율곡과 서모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선생의 서모가 패악함이 심해 조금이라도 뜻대로 되지 않으면 목매어서 죽으려고 하여 사람들이 달려가 구하여 그치도록 하였고, 또한 서모와 맏형의 관계가 특히 좋지 않아 선생이 두 사람의 관계를 말리고 사리(事理)로 간하기를 힘껏 하였으나 끝내 되지 않자 마침내 아버지에게 그 일을 울며 아뢰었고, 어느 날에는 책을 넣어두는 상자를 닫고 길을 떠났다. 그 속에는 부형(父兄)과 서모 앞으로 된 세 통의 편지가 들어 있었다. 그 편지의 끝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적혀 있었다.
‘끝내 화합하지 못한다면 차라리 죽어 아무것도 모르는 것이 낫습니다.’”
이러한 기록을 통해 율곡이 얼마나 마음 고생이 심하였는지 짐작할 수 있음이다.
매사를 스스로 처리하되 비용을 아끼어 웃어른을 모시고, 아랫사람들을 공평하게 거느렸으며, 희첩(姬妾)들을 꾸짖어 나무라는 일도 없었던 어머니 신사임당. 남편과는 늘 온화한 기색을 띠어 화합하였으며, 혹시 남편이 실수하는 점이 있으면 반드시 도리로써 간언하였고, 율곡을 비롯한 자녀들이 잘못하였을 때는 엄중히 꾸짖어 경책하였고, 비복들이 잘못하였을 때에도 어김없이 책망하여 그런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훈계하였던 어머니.
온 집안이 따르고 공경하였으므로 항상 화목하여 자애가 흘러넘치던 집안에 갑자기 불화가 싹트기 시작한 것이다.
박세채의 기록에서 보이듯 서모는 걸핏하면 목매어 죽겠다고 자해하였던 모양이고, 특히 서모와 맏형은 사이가 나빠서 율곡 역시 ‘끝내 화합하지 못하면 차라리 죽어 아무것도 모르는 것이 낫다.’라는 내용의 편지를 써서 남길 만큼 고통에 몸부림치고 있었던 것이다.
이 뜻하지 않은 불화는 어쩌면 아버지 이원수의 우유부단한 성격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따라서 신사임당이 생전에 ‘자신이 죽더라도 재혼만은 하지 말아 달라.’고 신신당부하였던 것은 이러한 남편의 우유부단한 성격의 폐해를 걱정하여 사전에 예방하려는 의도적인 유언이었을지도 모른다.
제1장 疾風怒濤(11)
그 무렵 율곡의 아버지 이원수에게는 첩이 있었다. 자신이 죽더라도 절대 재혼을 하지 않겠다고 언약한 이원수였으므로 대신 첩으로 살림을 맡도록 하였는데, 이 여인은 한마디로 악처였다.
양반이 아닌 양인(良人) 출신이었던 그녀는 정실부인이었던 신사임당에 대해 심한 열등의식을 갖고 있었던 듯 보인다. 신사임당이 죽자 그녀는 평소에 갖고 있던 감정을 고스란히 율곡 형제에게 쏟아 부어 단 하루도 편할 날이 없었던 것이다. 특히 율곡의 맏형인 선과 서모는 원수지간에 가까울 정도로 사이가 나빴다.
이에 대한 암시가 명종실록에 다음과 같이 짤막하게 나와 있다.
“이율곡은 어려서부터 이미 문장으로 이름이 나 있었고, 일찍 모친상을 당해 장례를 치르는데 정성이 지극하였다. 그러나 그 부친의 첩이 그를 사랑하지 않았다.…”
박세채(朴世采:1631~1695)는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당대의 유종(儒宗)으로 예학에 밝았던 학자였다. 율곡이 남긴 ‘격몽요결(擊蒙要訣)’로써 학문을 출발하였던 그는 율곡이 남긴 율곡이 세상을 떠난 110년 후 문집,‘남계집(南溪集)’에서 율곡과 서모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선생의 서모가 패악함이 심해 조금이라도 뜻대로 되지 않으면 목매어서 죽으려고 하여 사람들이 달려가 구하여 그치도록 하였고, 또한 서모와 맏형의 관계가 특히 좋지 않아 선생이 두 사람의 관계를 말리고 사리(事理)로 간하기를 힘껏 하였으나 끝내 되지 않자 마침내 아버지에게 그 일을 울며 아뢰었고, 어느 날에는 책을 넣어두는 상자를 닫고 길을 떠났다. 그 속에는 부형(父兄)과 서모 앞으로 된 세 통의 편지가 들어 있었다. 그 편지의 끝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적혀 있었다.
‘끝내 화합하지 못한다면 차라리 죽어 아무것도 모르는 것이 낫습니다.’”
이러한 기록을 통해 율곡이 얼마나 마음 고생이 심하였는지 짐작할 수 있음이다.
매사를 스스로 처리하되 비용을 아끼어 웃어른을 모시고, 아랫사람들을 공평하게 거느렸으며, 희첩(姬妾)들을 꾸짖어 나무라는 일도 없었던 어머니 신사임당. 남편과는 늘 온화한 기색을 띠어 화합하였으며, 혹시 남편이 실수하는 점이 있으면 반드시 도리로써 간언하였고, 율곡을 비롯한 자녀들이 잘못하였을 때는 엄중히 꾸짖어 경책하였고, 비복들이 잘못하였을 때에도 어김없이 책망하여 그런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훈계하였던 어머니.
온 집안이 따르고 공경하였으므로 항상 화목하여 자애가 흘러넘치던 집안에 갑자기 불화가 싹트기 시작한 것이다.
박세채의 기록에서 보이듯 서모는 걸핏하면 목매어 죽겠다고 자해하였던 모양이고, 특히 서모와 맏형은 사이가 나빠서 율곡 역시 ‘끝내 화합하지 못하면 차라리 죽어 아무것도 모르는 것이 낫다.’라는 내용의 편지를 써서 남길 만큼 고통에 몸부림치고 있었던 것이다.
이 뜻하지 않은 불화는 어쩌면 아버지 이원수의 우유부단한 성격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따라서 신사임당이 생전에 ‘자신이 죽더라도 재혼만은 하지 말아 달라.’고 신신당부하였던 것은 이러한 남편의 우유부단한 성격의 폐해를 걱정하여 사전에 예방하려는 의도적인 유언이었을지도 모른다.
2005-12-05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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