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저께는 마당에 있는 돌확의 물이 살얼음 져 있는 걸 보았다. 올겨울 들어 첫얼음이었다. 영하의 날씨 중에도 올해의 마지막 꽃인 노란 국화는 아직은 제철인 양 씩씩하게 피어있다. 그러나 벌은 날아오지 않는다. 봄부터 가을까지 마당에서 잉잉대던 그 많던 벌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얼마 전까지도 날지 못하는 벌들이 양지쪽에서 빌빌 기어 다녔었는데. 한번은 손녀딸이 데리고 온 강아지가 별안간 비명을 지르며 그 자리에 뒤집어진 적이 있다. 낯선 사람을 봐도 짖지도 않던 순한 강아지한테 무슨 일이 일어났기에 그렇게 죽는 소리를 치는지, 뒤집어져 떨고 있는 발끝을 살펴보았더니 벌이 붙어있었다. 날지 못하고 비실비실 기어 다녀도 벌은 벌이었다. 벌에 쏘여 죽은 사람도 있단 소리를 들은지라 동물병원엘 데리고 가야 하나, 약을 발라줘야 하나, 어쩔 줄을 모르고 있는데 강아지는 뒤집어진 채 벌에 쏘인 자리를 핥기 시작했다. 어찌나 열심히 그리고 맹렬히 핥는지 우리는 그냥 바라볼 수밖에는 달리 손을 쓸 엄두를 못 냈다. 이윽고 강아지는 언제 그랬더냐 싶게 멀쩡해져서 사람을 앞질러 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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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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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 소설가
낳자마자 아파트 속에 갇혀 인공사료 먹고, 텔레비전 보고, 문화생활(?)만 하던 강아지가 어디서 그런 신통한 응급조치법을 전수받은 걸까, 생각할수록 신기해하던 내가 같은 일을 당했다. 이번엔 마당이 아니라 실내에서였다. 어쩌다 실내까지 기어든 벌을 밟은 것이다. 양말위로 물렸는데도 악 소리를 지르며 그 자리에 주저앉을 만큼 지독한 아픔이었다. 나에게 밟힌 게 먼저인지, 나를 쏜 게 먼저인지, 아마 동시겠지만 벌은 이미 죽은 것 같은데도 나는 그놈을 휴지로 누르고 또 눌러 잔인하게 복수를 한 다음 행동은 나도 모르게 강아지 흉내였다. 나는 내 입으로 벌에 물린 엄지발가락을 핥으려 했지만 입이 닿지 않았다. 강아지처럼 뒤집어져서 애를 써보았으나 역시 닿지 않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 요가라도 배워볼 걸, 굳어버린 몸이 한심스러웠다. 그래도 나는 강아지한테 배운 응급조치법을 단념하지 않고, 약 대신 손가락으로 내 입의 침을 묻혀다가 물린 자리의 통증이 가라앉을 때까지 여러 번 발라주었다. 그 후 발등이 좀 부어오르고 그 자리가 가렵다가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다. 침을 안 발랐어도 그 정도로 치유됐을 것이나 나는 아직도 강아지한테 배운 자연 치료법을 신기해하고 있다.
첫얼음을 보고 나서 앞산을 바라보니 곱게 물들었던 나무들이 그 새 많이 헐벗었다. 우리 동네를 안아주고 있는 산은 요새 멧돼지가 집단으로 서식하고 있다고 해서 유명해진 아차산이다. 인가나 아파트 주차장까지 멧돼지가 나타났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친지나 자식들로부터 염려해주는 소리를 자주 듣는다. 지방에 사는 딸은 전화 걸 때마다 엄마 대문 잘 잠그란 소리를 잊지 않는다. 현관문은 잘 잠그지만 대문 단속은 허술한 편이어서 한번은 취한 사람이 마당으로 들어와 한동안 법석을 떤 일이 있기 때문에 그런 걱정을 하는 것 같았다. 취한(醉漢)은 골칫거리였지만 멧돼지가 쓱 대문을 밀고 들어올 생각을 하면 절로 웃음이 난다. 길가다 마주치면 지레 까무러칠지도 모르는 주제에 말이다. 만일 멧돼지를 만났을 때에는 우산을 펴들라는 대처법을 신문에서 읽은 것 같다. 시력이 나쁘니 바위로 착각할 거라나. 멧돼지 마음을 우리가 어떻게 아나. 착각할 거라는 생각이야말로 인간의 착각일 수도 있지 않을까. 멧돼지한테 공격당할 확률은 교통사고를 당할 확률이나 사나운 동네 개한테 물릴 확률에 비해 거의 제로에 가까우련만 사람들의 호들갑은 사뭇 요란하다.
이렇게 인간에게 집단 거주지가 들켰으니 종족을 보존하려면 멧돼지들 쪽에서 시급한 자구책을 마련해야 할 것 같다. 그 집단에도 원로(元老) 멧돼지가 있을 것이다. 서둘러 젊은 것들, 어린 것들을 소집해서 빨리 인간이 얼마나 모진 동물인지, 총이나 마취 총으로도 부족해서 만일 멧돼지 요리법을 개발한다든지, 쓸개나 신에서 신효한 정력제가 들어있다고 떠벌이는 인간이라도 나타난다면 씨도 안 남아 날 테니, 제발 대가 안 끊기도록 자중자애하고 먹이를 이 산중에서 자급자족하자고 눈물로써 호소하길 바란다.
2005-11-18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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