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새해가 시작될 무렵 우리의 만남도 시작되었다. 그녀는 친구 녀석의 학교 후배였고, 직장을 다니면서 한창 대학원 공부를 준비하던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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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종섭·손명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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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종섭·손명희
친구의 소개로 나가긴 했지만 사실 소개팅에 대한 큰 기대감은 없었다. 하지만 이런저런 얘기로 시간가는 줄 모르면서 편안하게 그녀와의 첫만남을 가지게 되자 그녀는 사려깊고 현명한 여인으로 내 가슴 한자리에 머물게 되었다.
경상도 남자 특유의, 속마음을 잘 드러내지 않는 무뚝뚝한 성격 때문에 그녀에 대한 나의 감정이 제대로 전해지지 못해 생긴 오해도 많았다. 처음 본 순간부터 그녀를 좋아하기 시작했지만 내 어설픈 태도 때문인지 그녀는 알아채지 못했다고 하니 중간에 있던 친구 녀석은 나름대로 상당히 애가 탔었나 보다.
평일엔 항상 밤늦게 퇴근하고 주말은 거의 반납하다시피 하고 바쁘게 일하던 때였고 그나마 일이 없어서 쉬는 날은 도서관에서 하루 종일 보내다가 늦은 저녁에 잠깐 짬을 내 식사를 하거나 영화를 보고는 곧바로 헤어져 집으로 오는 식이었다. 내가 생각해도 너무 틀에 짜여진 메마른 사람으로 보였을 것 같다. 오죽하면 그녀가 나를 보고 짜여진 각본대로 사는 사람같다고, 데이트도 그런 각본의 일부가 아니냐며 “정말 나를 왜 만나는 거냐?”고 그랬을까.
그렇게 밋밋한 만남(그녀의 말에 의하면)을 몇 번 가지고 난 뒤 이대로는 안될 것 같아 그녀에게 내 마음을 고백하기로 하고 그녀의 집으로 찾아갔다. 물론 그 날도 바쁜 일과를 마치고 밤늦은 시간에 그녀의 사정은 생각지도 않고 무작정 찾아갔었다. 혹시나 그녀가 나와주지 않으면 어떡하나 조금 걱정했었는데 다행히 그녀는 나와주었고 집 근처 카페로 갔다. 지금 생각하면 그런 용기가 어디서 나왔는지 신기할 따름이지만 그 때 난 순간적으로 그녀의 입술을 훔쳐버리고 그녀에게 고백을 했다. 그녀도 그녀지만 순간 내가 더 놀라서 머리 속은 온통 멍해지고 가슴은 ‘쿵쾅쿵쾅’ 사정없이 뛰었다. 그 짧은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몰랐다. 그 순간 나는 한 여인을 사랑하는 가슴 떨리는 느낌을 알게 됐고 이런 느낌이 사랑이란 걸 32년 만에 처음으로 알게 됐다. 그 후로 난 친구들 사이에서도 몰라보게 다른 사람으로 변하게 되었고 그러한 변화의 중심에는 항상 그녀가 있었다. 친구들 모임에서 항상 조용히 자리만 지키던 나에게서 나도 몰랐던 나를 찾게 해준 그녀가 이제 나의 신부가 됐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사랑을 느끼게 해 주었고,“사랑한다.”는 표현을 쓴 처음이자 마지막 여자인 그녀와 앞으로의 인생을 함께 할 수 있도록 허락해 준 삶에 고마울 뿐이다. 사랑한다 명희야!
2005-08-11 3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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