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계가 가고 있는 풍기는 대대로 신라의 땅. 신라의 옛 이름으로는 기목진(基木鎭)이라 불린다.
일찍이 서거정(徐居正)은 풍기의 소백산을 다음과 같이 노래하였다.
“소백산이 태백산에 이어져
서리서리 백리나 구름 속에 꽂혀 있네. 분명히 동남계(東南界)를 모두 구획하였으니
하늘과 땅이 이루어져 귀신은 인색함()을 깨쳤네.”
고려 말기의 문신이자 경기체가인 ‘관동별곡’(關東別曲)과 ‘죽계별곡’을 지은 뛰어난 문장가였던 안축(安軸)은 풍기의 빼어난 풍경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기문을 짓고 있다.
“나라의 동남쪽에는 원래 산은 하나인데, 고개는 세 개이니, 태백과 소백, 그리고 죽령이 그것이다. 서쪽으로 가면 죽령이 나오는데, 임금의 서울로 가는 길이고, 서남으로 가면 동남의 여러 읍으로 통하게 된다.…”
고향이 바로 풍기이고 일찍이 단양의 주부(注簿)를 지낸 안축이었으므로 누구보다 이곳의 풍수를 사랑하고 있었다. 그는 기문에서 소백산의 절경을 다음과 같이 노래하고 있다.
“…남쪽으로 가서 누대(樓臺)에 오르면 높은 곳으로는 만층으로 깎아지른 정상을 찾아 볼 수 있고, 먼 곳으로는 천 겹으로 겹친 봉우리를 볼 수가 있다. 이상한 바위들이 우뚝우뚝하고 많은 구렁들이 빙빙 돌고 있으며, 구름의 변화와 안개의 숨김이 천태만상이라 이를 피해서 숨을 수 없다. 또 개울물은 백 갈래로 흐르면서 소용돌이치고, 폭포는 날다가 산 아래에 이르러서는 깊게 가라앉은 물이 느릿느릿 굽이쳐 흐른다. 여울의 조잘거리는 소리가 들을 만하고 돌멩이의 자잘함이 사랑할 만하니, 산수의 크기가 이에 넓게 되는 것이다.…(중략)…사람의 마음은 크기도 하고 작기도 하다. 마음이 큰 사람은 그 위대함을 보고 왜소함을 알지만 마음이 작은 사람은 왜소한 것에 매어서 위대함을 잊는다. 옛날에 공자는 동산(東山)에 오르고서는 노나라가 왜소하다고 하였다. 그러나 태산(泰山)을 오르고서는 천하가 왜소하다고 하였다. 세상 사람들은 천길 되는 산은 귀하게 여기지 않으면서 조그만 석가산은 귀하다 한다. 또 만경창파는 사랑하지 않는다 하고 마당의 연못은 사랑한다. 이를 보건대 사람은 이것을 버리고 저것을 취하고 있음을 알 수가 있는 것이다.…”
안축의 기문대로 퇴계는 죽령을 통해 소백산을 내려가면서 공자의 태산을 본 것이었다. 퇴계는 죽령의 태산을 통해 천하 만물의 광활함을 새삼스럽게 터득한 것이었다.
죽령고개에서 제2의 출가행을 단행한 퇴계는 그 이후부터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자신의 결단을 실행하여 나간다.
풍기의 군수 또한 단양에서와 마찬가지로 불과 1년 남짓의 외직이었다.
풍기에서 퇴계가 이뤘던 업적은 풍기에 있던 백운동(白雲洞) 서원을 공인화하고 나라에 널리 알기기 위해 임금으로부터 사액(賜額)을 받고 국가의 지원을 요청함으로써 경제적 지반을 닦은 것이었다.
백운동 서원은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
중종 36년(1541년)에 풍기군수로 부임한 주세붕(周世鵬)이 이곳 출신의 유학자인 안향(安珦)을 배향하기 위해서 사묘(祠廟)를 설립하였다가 유생 교육을 준비한 서원을 설립한 것이 시초이다.
2005-06-22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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